“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
지난달 26일 극단적인 선택을 한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출신 故 최숙현 선수가 어머니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메시지다. 절규하듯 보낸 짧은 문장 너머로 최선수의 힘겨운 심장소리가 전해져온다. 최선수와 그 가족들은 소속팀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 사실을 알리고자, 지난 2월 국가인권위원회, 4월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에 각 진정서를 제출하였지만, 제대로 된 조사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22살 청춘이 용기를 내 불의에 저항해 보았지만, 거대한 벽에 막혀버린 것이다.
최선수의 동료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은 감독과 특정 선수만의 왕국이었다”고 하며 그동안 이루어진 상습적인 폭행과 갑질을 폭로했다. 특히 식사 자리에서 콜라를 시켰다는 이유로 20만원어치 빵을 먹도록 강요당했고 체중 감량을 이유로 3일씩 굶는 가혹 행위를 당하기도 했으며 슬리퍼로 뺨을 맞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긴급 현안 질의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자들 모두 폭행사실을 부인하며 “죽은 것은 안타깝지만 사죄할 건 없다”고 답했다. 분명 피해자가 있고 이를 목격한 사람도 있는데, 가해자만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또한, 주요 가해자 중 한 명으로, 폭언·폭행뿐 아니라 치료를 이유로 성추행까지 일삼았다는 ‘팀닥터’에 대해서는 주무부처인 문체부뿐 아니라 대한체육회 역시도 그 정체를 알지 못한다고 해, 부실한 선수관리의 실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체육계의 인권침해 행태는 새삼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역도와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각 금메달을 목에 건 사재혁·이승훈 선수가 후배선수를 폭행한 사건부터, 조재범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의 심석희 선수에 대한 성폭행 사건까지 국민들은 분노했고 그때마다 체육계는 철저한 자기혁신을 다짐해 왔다. 이쯤 되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조차도 되지 않는 상황에 참담한 심정뿐이다. 과연 체육계가 스스로 변화할 자정능력은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혹시 소수 엘리트가 중심이 되는 우리나라 체육계의 현실상, 체육인들 간 동업자 의식이 자정할 의지조차 없애는 것이 아닌지 심히 걱정이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체육계의 고질병인 가혹행위의 근원적 원인은 문화체육관광부 및 대한체육회 등 스포츠 유관단체들의 안일한 대처와 인권 감수성 부족을 우선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체육계 특유의 엄격한 상하관계와 복종 문화는 폭력과 폭언을 일종의 관행으로 치부하여 감히 문제제기조차 못하게 만들고, 성적만 좋으면 연금부터 병역 혜택까지 얻게 되는 ‘성적 지상주의’는 훈련의 완성도나 기록 상승을 위해서는 폭력과 폭언같은 인권침해행태조차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더욱 큰 문제다.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 한다. 선수들의 땀으로 이루어진 스토리는 그 어떤 각본보다도 위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땀의 근원이 폭언과 폭행이라는 반인권적 행태라면, 더 이상 스포츠가 국민들의 마음속에 설 자리는 없어질 것이다. 故 최숙현 선수가 떠난 자리, 한가득 숙제가 남아 있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슬픔만큼이나 무거운 그 숙제들을 어떻게든 풀어내야 할 것이다.
이승기 대표변호사(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