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 제33조 제2항에서는 의사 등 의료인이 아닌 자가 병원을 개설할 수 없도록 하고 있고, 이를 위반한 경우 처벌하게 돼 있다.
그런데 속칭 ‘사무장 병원’이라고 해서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의료인을 고용해 그 명의를 이용, 병원을 개설한 경우 그 소속 근로자에 대한 임금 등을 지급할 의무자가 누구인지가 문제 된 사건이 있다.
즉, 제약회사에 다니던 A는 퇴직 후 자신 소유 건물에 병원을 차리고, 의사 B와 C를 월급을 지급하기로 하고 고용한 다음 의사 B 명의로 ‘○○병원’이라는 상호로 의료기관 개설허가를 받아 그때부터 ○○병원을 운영했다. A는 ○○병원 총괄이사라는 직함으로 활동했고, B 명의로 된 병원 통장 계좌와 인장을 소지하면서 병원을 실질적으로 경영했다.
위 병원 소속 근로자들은 의사 B를 사용자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했지만 실제로는 A가 그 직원들을 채용했다. 또 A는 직원들을 직접적으로 지휘·감독했으며, 직원들에게 급여를 지급했고, 의사 B와 C에게도 매월 약정된 급여를 지급했다.
이러한 사안에서 병원 소속 근로자들이 A를 상대로 체불된 임금과 퇴직금의 지급을 청구하자, 1, 2심 법원은 의료인 아닌 사람이 의료인을 고용해 그 명의로 의료기관 개설신고를 하고, 의료기관의 운영 및 손익 등이 의료인 아닌 사람에게 귀속되도록 하는 내용의 약정은 강행법규인 의료법 제33조 제2항에 위반돼 무효이므로, 의료기관의 운영과 관련하여 얻은 이익이나 부담하게 된 채무 등은 모두 의사 개인에게 귀속된다는 이유로 의사 B와 근로자들이 체결한 근로계약서에 따라 임금 및 퇴직금 지급의무는 의사 B가 부담해야지 A가 부담할 이유가 없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계약의 형식과는 관계없이 실질에 있어서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는지에 따라 판단해야 하고, 반대로 어떤 근로자에 대해 누가 임금 및 퇴직금의 지급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인가를 판단함에 있어서도 계약의 형식이나 관련 법규의 내용에 관계없이 실질적인 근로관계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위 사안에서 A가 월급을 지급하기로 하고 의사 B를 고용해 그 명의를 이용, 개설한 속칭 ‘사무장 병원’에 있어서 비록 B명의로 근로자와 근로계약이 체결됐더라도 A와 근로자 사이에 실질적인 근로관계가 성립했다고 봐야 하므로 A가 근로자에 대해 임금 등을 지급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해 1, 2심 판결을 파기했다. 이로써 근로자들은 A 소유 건물에 대한 강제집행을 통해 임금 등을 지급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심갑보 변호사 / 법무법인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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