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정조대왕의 ‘만천명월주인옹’

최원재 문화부장 chwj74@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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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신궁(神弓) 이었다. 그가 활을 쏠 때면 50발 중 49발을 쏘아 명중시켰다. 그런데 마지막 한 발은 과녁이 아닌 허공으로 날렸다고 한다. 50발을 모두 명중시킬 수 있었으나 스스로 겸손하기 위해 마지막 한 발은 쏘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는 주역에 통달했던 정조의 깊은 뜻이 숨어 있다.

주역 점을 칠 때는 보통 시초라고 하는데 50개의 산가지를 사용했는데 그중 1개는 태극을 상징해 사용하지 않고 49개의 산가지만 가지고 주역 점쾌를 뽑는다고 한다. 그 점쾌를 통해 세상의 이치와 변화의 숨은 뜻을 찾아냈다. 정조는 여기에 착안해 1발의 화살을 제왕의 산가지로 여겨 아예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 ‘정조의 리더십 코드 5049’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자타 공인’ 정조와 화성 전문가인 한신대 김준혁 교수가 ‘리더라면 정조처럼’이라는 책을 펴냈다. 김 교수는 정조의 리더십을 49가지의 정책과 실천 사례로 풀어서 이야기한다.

최근 만난 김 교수는 에필로그를 통해 정조의 리더십을 정리했다. ‘군주민수(君舟民水)’ 해석을 하자면 임금은 배고 백성은 물이라는 것이다. 백성은 임금을 떠받들지만, 임금이 잘못하면 백성이 임금을 끌어내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군주민수를 정확히 이해한 국왕은 동양의 역사에서 수도 없이 있겠지만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정조라고 설명한다. 정조는 자신의 싱크탱크인 규장각 각신들과의 대화에서도 국왕과 백성의 관계를 늘 이야기하며 국왕 스스로 경계를 했다. 정조는 군주민수와 연계해 독특한 자신의 철학을 내놓고 국왕이 된 지 22년째인 1798년에 이를 자호로 삼기도 했다. 그것이 바로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다.

만천이란 한자 그대로 만 개의 시내를 의미한다. 여기서 시내란 작은 시내뿐만이 아니라 조선의 8도에 있는 모든 물길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강과 대동강 등 서해로 흘러가는 큰 강과 8도 곳곳에 있는 크고 작은 천들을 말한다. 이는 곧 민수, 백성을 뜻한다. ‘명월’은 말 그대로 하늘에 떠 있는 밝은 달을 의미한다. 밝은 달은 군주인데 결국 ‘만천명월’이란 우리 땅에 수많은 천(백성)을 골고루 비춰주는 밝은 달(임금)을 나타낸다. 정조는 “하늘에 떠 있는 밝은 달이 어느 천은 작은 것이기에 작게 비추고 어느 강은 큰 것이기에 더 많이 비추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국왕이 힘 있고 돈 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많이 베풀어 주고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서민들에게는 작게 베푸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베풀어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정조는 또 “천이 흐르면 달도 흐른다. 천이 멈추면 달도 멈춘다. 천이 고용하면 달도 고요하다. 그러나 천이 소용돌이치면 달은 이지러진다”라며 만천명월의 진정한 의미를 이야기했다. 하늘에 있는 밝은 달이 물과 함께 흘러가는데 그 물이 고요할 때는 같이 고요하며 평화로운데 천이 계곡을 만나거나 불규칙한 지형을 만나 소용돌이치면 달은 본래의 둥근 모습을 잃어버리고 모나거나 찌그러진 모습으로 제 모습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거센 물결로 배가 뒤집힌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군주와 명월, 민수와 만천은 일맥상통한다. 이것이 정조의 생각이고 이런 생각으로 평생을 살았다.

김 교수는 ‘리더라면 정조처럼’을 통해 이 사회의 리더들도 정조처럼 될 수는 없겠지만, 그의 생각을 따르기를 간절히 원했다. 힘 있는 자나 힘없는 자나 공평하게 베풀 줄 아는 이 시대의 군주와 명월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하다.

최원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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