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여성들 언어·문화적 차이 이유
부부·자녀·고부간 ‘갈등의 골’ 깊어
학업중단 일반가정 아동과 1.3배 차이
취학후 학교생활 부적응 가능성 높아
도내 다문화 28.6% 월소득 200만원↓
전문가 “일자리창출 등 금전 지원 넘어
우리사회서 맡을수 있는 역할 고민해야”
“백인 혼혈아면 예능에 출연하고 흑인이나 동남아 혼혈아면 다큐멘터리에 출연한다.” 지난 4~5년 전 인터넷 포털사이트 댓글 창에 달린 이 문구는 우리 사회 속 ‘다문화 가정’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고 평가받는다. 우리 사회는 6ㆍ25전쟁 이후 국내에 태어난 흑인 혼혈아를 향 ‘튀기’라는 멸시적인 호칭으로 부르기도 했고 다문화 가정 이주여성에게는 존중보다는 동정이나 무시, 비하가 담긴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다름’을 ‘틀림’으로 바라보며 맹목적인 인종차별과 배타적인 시선 등을 건넨 게 현재에 이르렀다. 지난 2018년 통계청의 <인구총조사>와 여성가족부의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 등에 따르면 도내 다문화 가정은 9만9천8가구, 가구 인원은 28만5천15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하지만 도내 다문화 가정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 건강가정 지원센터, 다누리 콜센터 등 관계기관은 코로나19로 업무에 제한이 생겼다. 여기에 가정 환경과 경제적 문제를 호소하는 다문화 가정도 적지 않다. 이에 경기일보는 도내 다문화 가정을 만나 이들의 애로사항과 고민을 듣고 현주소를 진단해 이들과 도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 갈등 투성이인 다문화 가정…가사ㆍ육아ㆍ언어문제에서 비롯된 부부ㆍ자녀ㆍ고부 갈등
“가사ㆍ육아ㆍ언어 문제로 힘들었는데 이를 해결할 공간도 마땅찮아 절망적이었어요.”
지난 2004년 21살의 나이로 중국에서 이주해 온 A씨(37ㆍ광명)는 이듬해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자녀를 낳으면서 우리나라에 정착했다. 결혼 생활 15년은 갈등의 연속이었다. 외벌이 집안 특성상 A씨가 가사와 육아를 모두 도맡아야 했기 때문이다. 가사에는 단순 청소와 식사 준비뿐만 아니라 40살이나 위인 시어머니 수발도 포함돼 있었다. 몸이 불편한 시어머니 수발이 끝났다 싶으면 청소하고 일터에서 돌아오는 남편을 위해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중간 중간 울며 보채는 딸을 달래고 밥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곤 하면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온종일 일을 해온 셈이다.
몸이 불편한 시어머니는 A씨에게 자주 짜증을 내곤 했다. 사소한 일로 트집 잡는 건 물론 딸을 낳았다는 이유, 발음이 어눌하다는 이유,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하대하곤 했다. 고부갈등에 무관심한 남편과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질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A씨는 딸 하나만 바라보면서 결혼 생활 15년을 견뎌왔다.
지난 2012년부터 결혼과 동시에 우리나라에 정착한 일본 출신 B씨(40ㆍ시흥)는 남편이 전처에게서 데려온 아들과의 갈등으로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제 고등학교 2학년생인 아들은 B씨와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자 엄마를 없는 사람 취급해왔다. 아들이 예의 없는 행동을 할 때마다 남편이 아들을 혼냈지만 부모 자식 간에 갈등의 골만 깊어져 갔다. B씨는 어느 순간부터 집 안이 가시방석 같으며 자신 때문에 집안 분위기가 나빠지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A씨와 B씨 모두 집안 분위기도 문제지만 분위기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를 해결할 공간이 마땅하지 않다는 점을 호소했다. 일각에선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 관계기관이 코로나19로 업무가 마비된 점이 이주 여성의 고민을 가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관계기관이 이주 여성의 고민 해결 공간이자 지역 사회 공동체 역할을 해오면서 상담, 앞서 이주해 온 이주여성과의 만남, 방문교육 등을 해왔기 때문이다.
신완정 청아심상교육연구소장은 “다문화 가정 관련 기관이 이주 여성과 혼혈 아동, 중도 입국 아동의 버팀목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상담”이라며 “코로나19에 따른 활동 제한에도 방역을 전제로 개인ㆍ가족 상담은 물론 비대면 상담 등으로 교류하는 형태를 이어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 점점 벌어지는 교육 격차…우리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요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따른 학교의 비대면 수업도 다문화 가정의 고민거리 중 하나다.
지난 2012년 C씨(48)는 베트남 출신 여성 D씨(32ㆍ이상 안산)와 결혼해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8살짜리 아들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코로나19 사태 발발로 비대면 수업을 듣고 있다. C씨 내외는 비대면 수업 중 뜻하지 않은 사태를 마주했다. 가장인 C씨가 출근하고 나면 D씨 혼자서 8살짜리 아들의 비대면 수업 감시와 4살짜리 딸의 육아를 맡아야 한다. 딸이 칭얼거릴 때마다 딸에게 시선을 돌리면 아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다른 짓을 하고, 아들에게 시선을 돌리고 있으면 딸이 계속 D씨를 찾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D씨는 아직도 우리말이 어눌한데다 학교에서 전달하는 아이의 숙제나 가정통신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 코로나19 사태가 아니었다면 학교에서 아이를 상당시간 돌봐줄 수 있었다. D씨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다문화 가정의 이주 여성들은 자녀의 교육을 도와주지 못했다”라며 “더욱이 논밭이나 공장에서 부부가 맞벌이하는 다문화 가정은 어머니가 부재하면 아이들을 맡아 줄 사람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진로 고민, 이성 문제 등을 겪게 될 텐데 현실적으로 와 닿는 조언을 해주기도 어렵고 정보를 구할 곳도 마땅찮아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2018년 기준 도내 다문화 가정 자녀 중 무려 74.8%가 11세 미만 연령대에 속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등교육을 받게 될 다문화 가정 자녀가 많아지게 돼 벌써 이들과 일반 가정 아동 간 교육격차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아울러 다문화 가정 자녀의 학업중단율은 일반가정 자녀 대비 1.3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특히 고등학생 연령은 학업중단율 차이가 1.5배에 육박했다.
전문가들은 취학 전후 다문화 가정 자녀의 교육 격차 확대는 장기적으로 학교생활 부적응, 학업 부진, 교내 폭력, 탈선에 이은 학업 중단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이를 막으려면 가정 내 이주여성을 향한 한국어 교육 확대, 다문화 가정 아동을 향한 학교 밖 수업을 통한 올바른 사회화 등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도기옥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다문화 위원은 “출산율 감소에도 다문화 가정과 아동들은 늘어나고 있는 만큼 이들을 미래 우리 사회의 역군이라 생각하고 능력을 계발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라며 “이주 여성을 향한 초기 교육 과정은 잘 설계된 편이지만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다문화 가정 아동이나 중도입국 아동 대상 교육 프로그램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도내 수원, 안산, 오산을 시작으로 운영되고 있는 글로벌청소년드림센터 등 다문화 가정 아동을 위한 기관의 역할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라며 “아동들이 어머니 국가 언어를 익히거나 학교 밖 교육을 통한 지식 습득 등을 통해 가정과 우리 사회 모두에서 올바르게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라고 말했다.
■ 돈 문제가 다가 아니야…다문화 가정 구제책은 사회화와 일자리 창출의 시너지 효과에
전문가들은 다문화 가정 구제책으로 이주 여성의 사회화와 일자리 창출을 넘어서 우리사회에서 이들에게 어떤 역할을 줘야 할 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영혜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거에는 이주 여성의 사회화에 따른 안정적인 정착만이 다문화 가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여겨왔다”며 “최근에는 사회화에 따른 일자리 창출 외에도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맡을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는 시기에 이르렀다”라고 말했다. 어려움에 처한 다문화 가정 구제를 위해서는 금전적 지원이 능사가 아니라는 의미다.
지난해 국내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77만원이었지만 도내 다문화 가정 중 월 평균 소득이 400만원 미만인 가정은 74.4%에 이르렀다. 월 소득 200만원 미만 도내 다문화 가정도 28.6%로 적지 않았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다문화 가정 내 남편 대상 교육과 다문화가정지원센터ㆍ새일센터 등을 활용한 이주 여성의 사회 활동 기반 확대를 통해 위기에 빠진 다문화 가정을 구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다문화 가정에서 이주 여성이 가장 많이 의존하는 존재가 남편인데 대다수 다문화 가정 남편은 가사와 육아는 물론 아내가 살아온 문화권을 향한 관심이 낮은 편이었다”라며 “더욱이 출산, 육아 경험이 없는 이주 여성은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해 어눌한 한국어로 유튜브나 TV로 출산, 육아와 맞서는 경우가 잦다”라고 말했다.
이어 “다문화 가정 남편을 대상으로 한 출산, 육아, 아내의 문화권 관련 교육을 확대해 이주 여성의 빠른 적응은 물론 태어날 아이나 중도입국 아동의 우리 사회 안착을 꾀할 수 있을 것”이라며 “관계 기관을 통해 사회화에 성공한 이주 여성과 아동이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이주 여성과 아동을 향한 튜터링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게 돕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권오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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