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광복절 그리고 ‘인도주의 4.0’

“짐은 깊이 세계의 대세와 제국의 현상을 감안하여 비상조치로써 시국을 수습코자 여기 충량한 그대 신민에게 고하노라.”

1945년 8월 15일 정오, 식민지 조선의 수도 경성, 라디오에서 일왕 히로히토의 항복선언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로써 1910년 8월 22일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된 지 36년 만에 질곡(桎梏)의 세월을 끊고 일본제국으로부터 한반도가 독립하게 되었다.

올해로 광복절을 맞이한 지 75년이 흘렀다. 자주독립국의 염원으로 시작된 우리의 광복을 위한 독립운동과 적십자 인도주의 정신 및 실천의 상관성은 19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59년 국제적십자운동이 시작된 이래 우리나라에 적십자 인도주의 정신이 뿌리를 내리게 된 계기는 바람 앞의 등불 신세였던 대한제국이 추구한 중립외교 정책이었다. 고종 황제는 당시 열강을 상대로 중립국으로서의 외교를 펼쳤으며, 이에 대한적십자사가 1905년 10월에 창립되었으나 을사늑약, 경술국치를 겪으면서 암울하고 굴곡진 우리나라 근대사와 그 운명을 함께하였다.

특히 일제는 1909년 7월 23일 대한적십자사를 일본적십자사 조선본부로 흡수하였다. 이는 을사늑약을 통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함을 적십자 폐지를 통해 대외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독립과 한국인이 자주민임을 대외적으로 선언한 3·1운동은 비폭력 평화정신인 적십자 이념인 인도주의 정신과 그 맥을 함께하였다. 3·1운동 후 일제에 의하여 강제 폐지됐던 적십자는 상해임시정부가 부활시켜 ‘대한적십자회’를 창립하고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여러 부침(浮沈)을 겪은 대한민국은 1960년 세계 최빈국에서 현재 국내총생산(GDP) 세계 10위, 무역규모는 세계 6위를 기록하고 있고, 최근 코로나19 관련 어느 선진국보다도 정부의 민첩한 대응과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K-방역으로 불리며 세계적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대한적십자사도 국내 최대 인도주의 네트워크로서 전국 45개 기관 48개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고 지난 한 해 적십자 인도주의 활동에 참여하는 약 300만 봉사원, 헌혈자들과 전국 50만명의 직접 수혜자들에게 인도적 지원을 실천해왔다. 국외적으로도 지난 2017년 세계 192개국을 대표로 하는 국제적십자사연맹 관리이사회로 선출되어 국제적십자운동의 효과적 실천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눈부신 성장이 가능했던 것은 우리 국민이 가지는 특유의 협동심 그리고 상생의 가치에 대한 존중의 발현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협력과 상생의 가치도 제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더불어 고도화된 디지털 사회가 가져온 초연결성의 사회가 되레 관계에 대한 피로도를 증가시켜 일종의 ‘JOMO족(Joy of Missing Out, 자발적 아웃사이더)’이 늘어나는 사회현상을 맞이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광복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자유 그리고 번영은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공생의 인도주의 이념으로 달성된 것임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이에 사랑과 봉사라는 인도적 실천가치를 토대로 ‘협력적 인도주의 공동체’가 구현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곧 인도주의 4.0으로서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시대의 효과적인 인도적 대응이 될 것이다.

※‘인도주의 4.0(Humanitarian 4.0)’은 대한적십자사에서 실용신안 등록함

이경호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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