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81세 일기로 타계한 미국 공화당의 ‘거물’ 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의 자서전 ‘쉬지 않는 파도(The Restless Wave)’. 뇌종양 투병 중에도 자신의 정치 인생을 정리한 회고록으로 출간되자마자 뉴욕타임스(NYT) 논픽션 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책이다. 이후 순위권에서 사라졌지만 매케인이 죽고 난 뒤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추모 열기와 함께 다시 1위에 등극한 책이기도 하다.
매케인은 6선 상원의원으로 36년 동안 정계에 있으면서 ‘의무, 명예, 조국’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생각이 다르면 같은 당이라도 대통령에게 맞섰고, 방향이 같으면 다른 당과도 힘을 합치는 초당파 정치인이었다. 공화당 출신임에도 버락 오마마 전 대통령이 주도한 미국의 의료보험 시스템 개혁 법안, ‘오바마케어’를 지지했고 이를 폐지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맞서 싸웠다.
매케인은 회고록에서 “오늘날 정치는 겸손이 부족하다”, “겸손이 완전히 사라질 때, 우리 사회는 갈가리 찢어질 것”이라며 겸손의 결핍, 이념의 양극화를 미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매케인의 우려는 트럼프의 자만과 양극화 전략으로 미국이 사분오열 되면서 현실화되고 있다.
한국은 어떠한가? 한 언론사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사회의 전통적 갈등 요소인 이념과 지역 갈등 구조 위에 계층과 젠더(gender·성)라는 새로운 갈등 요인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60대 이상은 이념을, 30~50대는 계층을, 20대는 젠더를 지목했고 전반적으로 빈부 격차에 따른 ‘계층 갈등’이 앞으로 가장 심각해질 것으로 내다 봤다.
이런 갈등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고 ‘입장 차가 너무 극명해 도저히 화해할 수 없었다’고 응답한 사람도 60%에 달했다. 다시 말해 한국 사회에서 갈등과 분열로 인해 개인이 느끼는 스트레스와 피로감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고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이런 갈등을 해결하거나 정치 의제로 풀어내기는커녕 여전히 이념이나 진영 논리로 오히려 국론 분열과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 15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김원웅 광복회장은 기념사를 통해 “이승만은 친일파와 결탁했다”, “안익태는 민족 반역자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여야(與野)는 설전을 벌이며 충돌했다. 미래통합당은 “망나니짓”이라며 김 회장의 사퇴를 요구했고 더불어민주당은 “(통합당은) 친일파의 대변자냐”고 맞섰다.
일제 강점기를 이겨내고 나라를 되찾은 지 75년이 지난 오늘을 경축하고 앞으로 힘을 모아 대한민국 발전과 국력을 위해 힘을 모아도 모자를 판국에 우리 정치권은 서로 상대를 비판하고 싸우는데 여념이 없다. 자신을 낮추거나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정치는 실종된 지 오래다. 정치적 분열을 해결하고 타협을 옹호하는 겸손한 정치인, 한국판 매케인을 바라는 건 필자만의 욕심일까?
이도형 홍익정경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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