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추억의 수인선, 돌아와서 반갑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이 1980년대다. 이 당시 나는 소래염전에서 타일작업을 하고 수차를 돌려가며 용돈을 벌었다. 당시 염부들은 끊임없이 소금을 만들었다. 물을 끌어내고, 대패로 밀어 소금을 모으고, 삼태기에 담아 소금창고에 옮겼다.

염전에서 일하셨던 어르신은 ‘채염’이란 소금걷기가 제일 힘드셨다 한다. 목도를 어깨에 지고 양쪽 끝 소쿠리에 소금을 가득 담았다. 물을 머금은 소금이라 몇갑절 더 무겁다.

소금창고에 옮겨진 소금은 짠물이 빠져나가 빠드득한 느낌으로 건조해지면, 흡사 트럭처럼 생긴 꼬마 기관차 ‘가시렁차’를 이용해 수인선 열차에 올려졌다.

놀 것도 없고, 즐길거리도 없던 그 시절 필자에게 수인선은 추억을 심어줬다. 소래염전에서 용돈도 벌고 수인선 주변을 놀이터 삼아 친구들과 한참을 뛰어놀던 어린 시절, 소금 실린 수인선 기차에 친구들과 피곤한 몸을 올리고 잠이 든 적 있다. 꿀맛 같은 깊은 잠을 잔 뒤, 눈 비비고 일어나보니 눈앞이 캄캄하다. 아니 칠흑같이 어둡다고나 할까.

시커먼 석탄이 산처럼 쌓여 있는 수원역이었다. 졸지에 기차표도 끊지 않고, 수원을 행선지로 정하지도 않았는데 수원역에 도착했다. “이 녀석들 경찰서에 보내야겠다”, “부모를 잃어 버린 것 같은데 고아원에 보내자”라는 아저씨들의 농 섞인 말은 지금이야 우스개로 넘어갈 수 있지만, 그 당시 어렸던 필자와 친구들은 간담이 서늘해지며 간이 콩알만해졌다.

소래 염전이 폐염이 된 지 어느덧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수원에서 인천까지 느릿느릿 2시간 넘게 달리던 협궤열차는 1995년 12월 폐선 돼 역사의 뒤안길 속 기록으로 남았다. 그러다 지난 9월10일 수인선이 다시 연결되며 개통식을 갖고, 이틀 후 52.8㎞의 전 구간 운행을 시작으로 25년 만에 경기 남서지역을 잇는 광역전철로 재탄생했다.

수인선의 완전 개통으로 경기남부에서 인천 그리고 서울 간 주민들의 교통편리성이 대폭 향상됐다. 그동안 철도를 이용해 수원에서 인천을 오가려면 구로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불편함도 사라지고, 전철 소요시간도 90분에서 55분대로 단축됐다. 그리고 오이도역에서 수원역까지 40분이면 갈 수 있다.

수인선 개통으로 그동안 다소 침체됐던 관광과 지역상권이 다시 한번 힘차게 도약하기를 소망해본다.

안광률 경기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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