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주(州)마다 사형 존폐 여부가 제각각인 미국에서는 같은 죄를 짓고도 주 경계선(線)의 좌우 어디에 서 있었는지에 따라 목숨이 오락가락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선(線)은 이렇듯 무섭고 강하다. 지도 위 연필로 만든 경계선은 다만 한 인간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19세기 후반 베를린회의에서 제국주의 열강들은 정치적 이해와 경제적 계산에 따라 아프리카 각국의 국경선을 자기들 멋대로 정했다.
잘못된 경계선(線)에서 말미암은 치명적 오류 - ‘선(線)의 저주’는 멀리 아프리카에만 있지 않다. 지역적 특성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수도권 영역 획정은 수십 년째 동두천을 비롯한 군사접경 지역의 숨통을 틀어막고 있다. 수도권정비계획법과 그 시행령은 경기북부권역 전체를 수도권이라는 멍에로 싸잡아 가둬버렸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다. 70년 안보희생 속에서 도시 ‘성장’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 동두천에 ‘성장관리권역’의 굴레를 씌워서 공장도 대학도 지을 수 없게 막아버렸다. 오히려 ‘성장’을 ‘장려’하고 ‘지원’하기도 바쁜 도시의 손발을 ‘관리’라는 미명 아래 묶어둔 셈이다.
수도권 규제란 북부 군사도시들의 희생 속에서 마음 편히 고도성장해 온 경기 남부의 잘사는 도시들한테나 어울릴 장식이다. 대체 동두천의 어디를 봐서 수도권이라는 것인가? 동두천을 포함한 경기북부권역에 수도권이라는 딱지를 함부로 붙여서는 안 된다. 최근의 경기도 발표 자료를 보더라도 접경지역 일부 도시들은 가파른 인구 감소세로 지자체 소멸을 걱정할 판이다. 수도권정비계획법의 목적은 밀집된 인구와 산업의 ‘분산’이다. 정반대로 인구와 산업의 ‘밀집’을 유도해야 할 시국에 처한 동두천 등을 계속 수도권 울타리에 가두는 것은 경기북부에 대한 저주나 다름없다.
거기에 더한 군사시설·상수도·자연 보호라는 겹겹의 설상가상 규제는 이제 지적하는 것도 입이 아플 지경이다. 위헌 소지도 있다. 구체적 범위와 기준 제시도 없이 수도권 구역 지정을 시행령에 위임한 수도권정비계획법 제2조는 헌법 제75조의 포괄위임금지 원칙에도 저촉될 여지가 다분하다. 헌법 제11조가 선언하고 있는 평등 원칙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다루려는 실질적 평등이다. 도저히 같다고 볼 수 없는 지역들을 똑같이 취급하여 선을 그어버린 수도권정비계획법은 적어도 동두천을 비롯한 접경지역 군사도시들에게는 위헌적 악법인 셈이다.
동두천과 경기북부 접경지역 군사도시들은 아사(餓死) 직전에 몰려 있다. 수도권정비계획법과 동법 시행령이 하사한 ‘수도권’이라는 그 이름을 이제는 정중히 반납한다. 주 경계선을 착각해서 사형당하는 미국의 죄수는 그나마 죄를 짓기라도 했지만, 70년 세월을 국가안보에 헌신한 동두천은 무슨 죄란 말인가? 더 늦기 전에, 잘못된 그 선을 바로 잡아야 한다.
정문영 동두천시의회 의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