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나눔의 선의지

천민이 왕이 되어 수라상을 마구 먹어치웠다. 역사영화 ‘광해’의 한 장면이다. ‘가짜 왕’은 왕이 남긴 음식으로 궁녀들이 식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내관이 전한 진실을 듣자 곧 팥죽 딱 한 그릇만 먹고 모든 음식을 거둬가게 했다. 여기서 우리는 착한 마음이 추동한 ‘나눔’이 ‘공유’를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내관의 조언과 선한 의지를 가진 ‘가짜 왕’이 생각을 바꿔 과식을 포기한 것이다. 이처럼 ‘선한 의지’로 타인의 조언을 받아들이고 대화에 참여하여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태도가 나눔을 공유의 길로 가게 하는 것이다.

‘선의지’는 타인의 고통을 염려하여 계산의 논리를 따지기 전 바로 작동하는 인간 본연의 마음이다. 선의지는 유ㆍ불리의 계산적 사고와 독립해 상위적 관념으로 자리 잡아야 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계산적 이성이 강하게 자리 잡은 우리 시대에서 선의지를 잃은 ‘나눔’이 자칫 목적을 망각한 하나의 손익계산서로 변질 될지 몰라 두렵다.

‘선의지’를 공유하고 있다면, ‘선별과 보편’의 계산적 논쟁이 극도로 대립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시대는 선의지의 강도보다 계산적 이성의 방법론적 강도가 더 크게 부각되어 논란을 벌이고 있다.

인간의 근본적 본성이자 궁극적 목표가 되어야 할 ‘나와 당신과 우리’가 되어야 할 관계가 극도의 계산에 집착하여 수치적 관계로 전환되고 수치를 계산하는 치밀한 결과가 가장 정당한 결과가 되는 것처럼 ‘선의지’를 잃고 망각하고 있다.

시장경제 발달의 역사에서 대안이 ‘선의지의 나눔’이 아닌 ‘계산적 나눔’으로 그 형평을 가려보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고 주장하는 논리들이 커왔고, 그 논리들이 자본과 산업을 증가시키고 다시 형평 나누기의 계산으로 빠져들게 했다. 이는 계속 반복되고 더 촘촘해질 것이다. 선의지의 본성이 지속적으로 소원해진다면, 비극은 결국 우리들의 몫이 될 것이다.

논쟁으로 잃어버리는 시간을 아까워해야 할 것이다. 선별이건 보편이건 그 방식이 중요하다고 집착하는 시간을 아껴 선의지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논쟁이 격화되어 누가 옳고 누가 더 정확한 계산을 보여주는지의 논쟁은 선의지와 멀어진 형식화된 나눔의 결과를 가져 올 것이다. 선의지의 작동이 다시 공유되어야 한다.

다시 기억해 내야 한다. 근본의 선의지가 아직도 우리에게 내재해 있다는 것을.

박근철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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