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예술은 이제 없어도 되지 않을까?

예술은 이제 없어도 되지 않을까. 특히 대중예술이 아닌 고급예술, 그중에서도 미술 말이다. 현대미술은 마음 편하게 즐기기에 너무도 많은 선(先) 지식이 필요하고, 예술과 예술 아닌 것의 경계도 불분명해 보이며, 짬을 내서 즐기기에는 일부러 시간을 쥐어짜 미술관을 찾아가야 하니, 이 디지털의 세상에 이미 뒤떨어진 예술장르가 아닐까 생각을 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추석 저녁 황금시간대에 방영된 나훈아쇼는 이례적인 시청률을 기록하며 온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그중에 특히 인상적이었던 곡은 <테스형>이었는데, 특유의 구성진 목소리로 인생의 의미를 묻는 대상인 테스형은 다름 아닌 ‘소크라테스형’이었다. 가사에 등장하는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은 기실 텔포이의 아폴로 신전 앞에 새겨진 말이라지만, 사실 관계가 뭐 대수랴. 소크라테스를 형이라 부르며 과거의 철학자에게 답 없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는 가수 나훈아의 거침없음에 감탄, 또 감탄할 뿐이다.

해석의 필요 없이 즉각적으로 다가오는 그러한 대중예술에 비해 미술은, 더구나 현대미술은 참 어렵다.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미술 사조는 인상주의 즈음에서 멈춘 것이 아닐까 싶은 정도이다. 따스한 햇볕 아래 눈부시게 빛나는 풍경들이 그려지던 때로부터 약 사십여 년이 지나, 웬 남자 소변기가 <샘>이라는 제목으로 공모전에 출품되었을 때 모든 아름다움의 이상은 와르르 무너졌다. 그것은 미술계에 던지는 핵폭탄이었고, 그 이후 미술은 결코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이 여기서 가능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에 가면 눈을 사로잡는 작품들이 있다. 잘 그렸다거나 잘 만들었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어떤 형태 앞에서 발길이 멈추고 만다. 인생의 한 찰라, 어떤 작품과의 고요한 대면은 남은 인생 동안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 아니, 바로 그런 순간을 고대하고 미술관으로 간다. 단 한 번이라도 그러한 경험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다시 그 시간이 불현듯 다가올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불가해한 순간, 그 순간이 지나면 바로 안개가 걷히듯이 일상의 분주함이 돌아오지만, 어떤 한순간이 다음을 있게 한다. 참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잘 먹고 잘 사는 것과는 별 상관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술은 그래서 아직도 있다.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이윤희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