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인가요”…유령처럼 살아야 하는 ‘미등록 아동’

아동학대 그래픽. 경기일보DB
아동학대 그래픽. 경기일보DB

#1. 온몸에 멍이 들고 장기까지 파열된 아이의 나이는 불과 세 살. 며칠 전 하남에서 베트남인 엄마에게 학대당한 아동은 현재 아무런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다. 하남시와 경찰이 본국 베트남으로 출생신고 후 외국인등록을 추진 중인데 엄마가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구속된 상태라 이마저도 곤란하다. 다행히 병원에서 치료비를 내주기로 했지만, 치료를 마치고 나면 갈 곳이 없다. 현행 체계에선 아동일시보호소에서 최장 6개월 머무르는 것만 가능하다.

#2. 창진군(16)은 세상에 없는 사람이다. 불법체류 중국동포 부부에게서 태어나 출생신고 없이 살아온 창군은 8세 때 계단에서 굴러 팔이 부러졌다. 보험의 테두리 밖에 놓여 치료비는 100만원 가까이 나왔고 비정한 부모는 아들을 버렸다. 홀로 남겨진 창군은 언제 추방당할지 몰라 아파도 병원 대신 약국을 찾아야 했다. 그가 거쳐온 고아원만 5곳, 내년 17세가 되면 지금 머무는 곳에서도 떠나야 한다.

명확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채 아동학대가 잇따르는 상황(경기일보 19일자 7면)에서 미등록 아동은 학대를 당해도 사실상 아무런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에 놓인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국제아동인권센터에 따르면 오는 20일은 유엔아동권리협약 비준일로, 유엔 가입국인 한국도 해당 협약에 따라 아동의 생존 및 발달 권리 등을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미등록(불법체류) 아동을 보호할 법적 근거는 부실하고 정확한 인구 현황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법무부 출입국ㆍ외국인정책본부가 집계한 만 19세 이하 미등록 외국인은 올해 기준 8천466명으로, 2017년 집계한 5천279명에서 60.4% 늘었다. 다만 합법적으로 입국한 뒤 체류기간이 만료된 경우만 집계되는 탓에 앞선 사례처럼 출생신고가 안 돼 서류상 존재가 확인되지 않는 경우까지 따지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주아동 관련 단체들이 자체 집계한 미등록 아동은 최소 2만여명에 달한다.

현행법상 미등록 아동을 보호할 방안이 없어 이주아동 관련 단체들은 2019년에 이어 지난달 28일 재차 국가인권위원회에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라 미등록 아동의 기본권을 보장하라’는 진정을 제기했다. 내용은 ▲미등록 아동 체류자격 부여(법무부)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 보장(교육부) ▲의료급여 등 건강권 보장(보건복지부) 등이다.

국가인권위는 관련 제도 마련 이전에라도 피해자들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가용한 모든 절차를 활용해 체류자격 부여를 적극 심사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사실상 달라진 것은 없다.

강은이 시흥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국무조정실 산하 다문화가족정책위원회 위원)은 “시흥과 안산ㆍ화성 등에 미등록 아동이 많은데 그 수를 정확히 알 수 없어 대책 마련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불법체류 아동이 학교에 재학 중이면 고교 과정을 수료할 때까지 강제퇴거 등 출국조치를 자제하고 있다”며 “다만 고교 졸업 후에는 국적을 취득하고자 해도 출입국관리법 및 국적법 요건에 충족되지 않아 출국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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