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무신불립

신뢰(trust)란 상대방과 한 약속이 그대로 실현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신뢰는 법과 같은 강제성은 없지만 때로는 법보다도 더 강하게 작용하기도 하고, 우리 사회를 유지해주는 근간이 되는 가치이기 때문에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핵심요소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러한 신뢰의 개념이 정부와의 관계까지 확장되면 정부신뢰 논의로 연결된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그의 저서 에서 한국을 저 신뢰국가로 규정했는데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가 말하는 신뢰는 사회구성원들이 서로 믿고 자발적으로 협력하는 개념으로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포함된다. 그런데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만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저 신뢰국가에 머물러 있어 보인다.

무려 24번이나 수정된 부동산 정책은 정부가 국민과 한 약속을 그대로 실현하리라는 믿음을 깨버렸다.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문제가 보이면 잠깐 그 문제만 해결하기 위한 규제정책을 펴고 규제로 인한 다른 문제가 나타나면 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규제를 만드는 일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초기에 정책을 믿고 실행에 옮긴 국민이 뜻하지 않게 손해를 입게 되는 문제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책을 옹호하는 정부와 여당 관계자들의 모순적인 모습마저 보이며 국민의 실망과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정부신뢰에 치명적이다.

하나의 정책을 시행하려면 앞서 준비해야 할 사항이 매우 많다. 정책의 목적과 방향을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정책이 미칠 파급 효과에 대한 시나리오 검토와 관계 전문가와 시민들의 의견 청취 등을 충분히 거쳐야 한다. 그래야 국민은 정부 정책을 신뢰하고 쉽게 순응한다. 국민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정작 국민이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고, 전문가들의 말을 흘려들으며 고집을 부리는 지금의 태도를 수정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논어 안연편에 보면 공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데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묻는 제자의 질문에 식(食, 배불리 잘 먹이는 것), 병(兵, 외세로부터 안전하게 지키는 것), 신(信, 믿음을 주는 것)이라고 대답하며 그 중 가장 중요한 요소로 신(信)을 꼽았다. 현대에도 우리가 유념해야 할 대목으로, 문재인 정부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의 뜻을 다시 한 번 새기며 정책을 펴길 바란다.

김선교 국민의힘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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