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제대로 된 약방문이 필요하다

이선호 지역사회부장 lshg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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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공분을 사는 사건이 잊혀질만하면 터진다. 올해 초 이른바 ‘정인이 아동학대 사건’이 전 국민을 분노케 하고 있다. 입양한 양부모의 극심한 학대로 16개월 된 어린아이가 숨진 사건이다. 양부모로부터 학대당한 정인이의 생전에 천사같이 환하게 웃는 사진이 공개돼 안타까움을 더했다.

정인이는 모두 3차례 아동학대 신고가 있었는데도 경찰은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 이 때문에 학대가 지속됐고 결국 어린 정인이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비난의 화살은 학대한 양부모는 물론 학대 의심 신고에도 불구하고 이를 막지 못한 경찰로 향했다. 결국 6일 김창룡 경찰청장은 정인이 아동학대 수사 미흡 지적에 대해 인정했다. 김 청장은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고 나서 재발 방지 대책도 발표했다.

이번 정인이 아동학대 사건은 사회 약자 보호에 대한 시스템의 문제점을 드러낸 사건이다. 입양기관의 입양 아이에 대한 사후 관리 부재,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경찰의 소극적 수사, 허술한 관련 법 문제 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정치권도 뒤늦게 아동학대 처벌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법안을 발표하며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문제는 사회적 이슈가 된 충격적인 사건이 터질 때마다 쏟아지는 대책이 그 순간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슈가 사라질 때쯤 대책 마련을 위한 움직임도 슬그머니 수면 아래로 가라앉기 일쑤다.

아동을 성폭행해 충격에 빠트린 조두순 사건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말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 출소를 앞두고 세상이 떠들썩했다. 조두순이 출소 후 피해자가 거주 중인 안산시에 정착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현행법상 조두순이 안산에 오는 것을 막을 수 없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피해자 가족들이 되레 이사를 가야 하는 현실에 대한 분노가 폭발했다.

2008년 조두순 아동 성폭행 사건이 알려졌을 때도 아동 성범죄 처벌 강화 대책이 나왔지만 조두순이 12년 징역형을 살고 나올 동안 피해자 보호 대책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피해자가 지역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12년이 흘렀지만 바뀐 것이 거의 없었다. 조두순이 12년 징역형을 살 동안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무엇을 했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정치권은 이번에도 뒤늦게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자의 재범 방지 및 감시 강화를 위해 전자장치 부착 명령을 받은 자의 준수사항을 정비하는 내용의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을 개정했다.

사회 공분을 사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와 정치권은 대책을 발표하고 법률 개ㆍ제정을 약속했다. 그러나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면피식, 땜질식’ 대책이라는 인식을 지울 수 없다.

안타깝지만 이미 정인이는 죽었다. 완벽한 대책은 아니더라도 더 이상 제2, 제3의 정인이와 같은 아동학대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제대로된 ‘약방문’을 마련해야 한다. 급조한 불량 약방문으로 우리 사회의 병을 치료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선호 지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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