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라 선왕은 음악을 좋아하여 자주 피리 연주를 들었다. 선왕은 연주 때마다 300명의 악사를 동원하고 연주가 끝나면 그들에게 쌀이나 돈을 하사했다. 이때 남곽이라는 처사가 있었는데 남곽은 본래 피리를 불 줄도 몰랐지만, 머리 숫자만 채우고 왕에게 많은 봉급을 받았다. 나중에 선왕이 죽고 민왕이 왕위를 계승했는데, 민왕은 합주보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독주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에 남곽은 자기 실력이 들통날까 봐 보따리를 옆에 끼고 한밤중에 줄행랑을 쳤다.
한비자(韓非子)의 내저설(內儲說)에 나오는 고사다. 실력도 없으면서 적당히 무리에 섞여 보상을 받은 남곽의 행태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감염병과 맞서 싸운 2020년이 정신없이 지나고 나니, 불현듯 위의 고사가 마음에 경종을 울린다. 지난 1년간 안양시의 실력이 들통나지는 않았는지 복기를 해본다.
2020년은 처음 겪는 일투성이였다. 코로나19로 인해 촉발된 우리 일상과 시대의 변화 속에서 우리 시 공직자들은 어떻게 대처했던가. 나름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자평해본다. 동시에 만약 우리가 남곽처럼 안일하게 처신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도 상상해보게 된다. 실력도 없으면서 ‘하던 대로’, ‘적당히 묻어가는’ 공직자가 많았다면 어땠을까? 지금의 방역 성과는커녕 방역체계 자체가 무너지고 시민의 삶이 절망으로 가득 찼을 것이라고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상상만 해도 아찔한 심정이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공직자의 길은 무엇일까? 특히,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위기 상황에서 ‘과연 공직자의 사명은 무엇일지’ 다시금 고민하게 된다. 코로나19는 우리의 일상을 위협했지만, 동시에 시대 변화에 속도를 붙이기도 했다. 대면 기반이던 우리 생활이 비대면 중심으로 움직이게 됐고 인공지능, 자율주행,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4차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기술이 더 주목받게 됐다. 바야흐로 새로운 표준, ‘뉴노멀’의 시대가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이다. 평소였다면 남곽과 같이 ‘적당히’, ‘하던 대로’ 행동해도 본 실력이 탄로 날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무사안일한 행태는 급격한 시대의 변화 속에서는 곧장 들통날 수밖에 없다. 단순히 창피를 당한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공직자가 타성에 젖어 시간만 축내며 지내는 것은 조직에 해를 끼치는 행위이자 시민에 ‘악(惡)’을 행하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본다.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공직자라면 시대의 변화를 미리 준비하고 고민하고 공부해야 한다. 선제적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한다. 시민의 행복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향해 관성적으로 움직이던 틀을 창의적으로 깨부숴야 한다.
“궁즉변(窮卽變), 변즉통(變卽通), 통즉구(通卽久).” 주역에 나오는 경구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뜻이다. 궁지에 몰린 우리는 ‘변화’할 수밖에 없고 그 변화 가운데 ‘통’ 하는 것들만 ‘오래가는’ 새로운 법칙이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오래가는’ 새로운 법칙을 만들려면 평소에 열심히 실력을 쌓아놔야 한다. 또한, 제대로 된 공직자라면 오직 시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오직 시민만을 생각하는 위민행정을 펼치는 공직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할 때에만 시민의 삶과 밀접하게 호흡하는 공직자이자 시민으로부터 존경받는 공직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최대호 안양시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