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새우와 돌고래 논쟁은 그만

바이든 당선 축하전화 순서로 소란이 있더니 미국의 새 정부가 출범하고 신년 정상통화 순서가 다시 논란이다. 한중정상 통화 다음 날 미·일정상의 전화외교 순서를 두고 우리 내부에서 한국외교를 친중 반미의 프레임으로 몰아가고 있다. 설령 미국이 의심해도 우리는 통화순서와 외교적 중요도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해야 하는데 스스로 외교적 입지를 좁히고 있다.

한국외교를 친미반중 아니면 반중친미로 규정하고 미·중 양자택일의 문제로 몰아가는 것은 우리의 국가 위상에 맞지 않는 단편적 도식화다. 국력을 가늠하는 지표의 하나인 GDP를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1980년 세계 28위(650억달러)에서 2005년 10위(8천980억달러)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다. 그 이후로 세계경제지형의 변화에 따라 10등 언저리에 머물러 있지만 2020년 GDP총액 기준으로 10위(1조5천867억달러)인데도 우리는 여전히 겸손하게 ‘고래 사이에 낀 새우’를 자처하고 있다.

1980년대부터 우리 외교정책의 현자들은 한국의 산업경쟁력은 국제분업체계에서 일본의 하청업체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려주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지혜를 뽐냈다. 2020년대에는 우리의 국력에 부합하는 위상과 역할을 획득하고자 대외정책의 방향을 수정하고 새로운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국제정치는 스스로 생존을 책임져야 하는 무정부상태라는 점에서 흔히 무법천지인 폭력배들의 뒷골목에 비유한다. 현재 대한민국 외교정책의 핵심은 새우와 돌고래 사이에서 정체성 논란이 아니라, “고래가 될 것인가?”라는 의지와 결단의 문제다. 그리고 고래가 되려면 어떻게, 언제까지 우리 앞의 캐나다, 이탈리아, 프랑스를 넘어 영국까지 추월할 것인지 방책을 세워야 한다.

외교란 원래 국가의 위상이 높아지면 접촉은 다면화되고 의제도 다양화되면서 국익을 위하는 기준 이외에는 일관성없는 주장이 나올 수밖에 없다. 미국의 신임 블링컨 국무장관은 취임 첫 브리핑을 통해 미중협력을 강조하면서도 신장지역에서 위구르족 집단학살에 대한 중국 정부의 책임 문제도 언급했다. 한국 외교도 다변화·다양화 속에서 국익을 위해서는 미국의 사드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중국 공산당 100주년을 축하하는 것이 현실적 대응이다.

바이든의 ‘미국이 돌아오기(America is back)’ 위해서는 동아시아전략은 물론 세계전략 차원에서도 정상의 통화순서를 이유로 한국을 외면할 수 없다. 중국도 미국의 반중연대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한국을 중국 편에 끌어들이지는 못해도 미국을 적극 지원하지 않도록 해야 할 만큼 한국은 중량감 있는 국가다. 바이든의 미국은 우리 외교에 기회다. 지금은 막연한 비관론보다 우리가 ‘원하는 것’과 ‘해줄 수 있는 것’의 목록을 만드는 것이 더 생산적인 논쟁이 될 것이다.

이성우 경기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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