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은 매년 발생한 범죄사건을 통계화해 전산 입력한 ‘범죄통계원표’를 발표한다. 2019년 자료를 보면 한국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 범죄는 ‘사기죄’로 집계됐다. 총 범죄 수 958,865건 중 사기죄가 241,642건이니 25.2%에 달한다. 4건 중 하나다.
다시 통계를 보니 지난 10년 동안 전체 범죄는 20%가량 감소했지만 사기 범죄는 12% 증가했다. ‘눈을 떠도 코 베어 간다’, ‘거짓말도 잘만 하면 논 다섯 마지기보다 낫다’는 우리 속담처럼 정녕 우리는 사기에 최적화된 나라인가?
전과자가 가장 많은 범죄도 사기죄다. 사기 전과 10범이 넘는 자들이 수두룩하다. 사기범의 55%는 5개 이상의 사기 전과를 가지고 있다. 재범률도 75.9%나 된다. ‘사기꾼이 하는 소리는 숨소리 빼고 다 거짓말’이라는 말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내가 만난 사기꾼들은 대부분 목소리가 좋고 설득력이 있었다. 그리고 절대 강요하지 않는다. 강요하면 강도가 된다. 사기꾼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제날짜에 약속을 지키면 CEO이고, 못 지키면 사기꾼이 된다”.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이다.
잠시 잠깐 약속을 못 지켰을 뿐 다른 파렴치범과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별로 죄의식도 없다. 언젠가는 약속을 지키겠다는 희망고문을 한다. 우리는 돈을 빌렸다가 갚지 못했다고, 약속을 못 지켰다고 사기라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람을 속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전부 사기꾼이다. 우리는 사기라는 말을 자주 쓰나 실제 사기죄로 구속되는 사람은 빙산의 일각이다. 사기 범죄가 계속 증가하는 이유는 사기죄의 형량이 낮고 피해 금액의 회수율이 17%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학력 위조나 경력 위조는 사기죄에 포함되지 않고 업무방해죄나 허위작성 공·사문서 행사죄에 해당한다. 정경심씨 같은 경우다.최근에는 남의 소설을 도용해 각종 문학상을 휩쓴 사기꾼이 나왔다. 그는 학력, 병역, 경력 모두 허위로 밝혀졌다.
사기에 관대하니 사기가 넘쳐난다. 사기에 관대한 국민은 위정자의 사기에도 무감각하다. 허황된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아 국민이 큰 피해를 보고 있는데도 그냥 화만 낸다. 형법상 사기죄는 피해자가 특정돼 있지만, 위정자의 사기는 대상도 광범위하고 그 피해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하지만 위정자의 사기는 형법상 사기죄는 아니다. 무슨 죄로 처벌해야 하나?
이인재 건국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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