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권정부를 중심으로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이용해,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한국은행이 인수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한국은행의 국채 인수에 관한 논의는 실질적으로 재정건전성 문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코로나19 위기 대응으로 정부의 재정지출이 증가하는 가운데, 정부는 국채 발행을 통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대량의 국채를 발행하고자 할 경우, 국채금리 인상 요인이 되고, 극단적인 경우, 정부가 필요한 자금을 시장에서 조달할 수 없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사실 한국은행은 이전부터 통화정책(물가안정 등)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시장에서 국채를 매입해왔다.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한국은행의 국채 매입에 관한 논의는 국채 매입의 규모와 국채 매입의 목적 등이 기존과는 상이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행법 75조에서는 한국은행이 정부로부터 국채를 직접 인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중앙은행이 자국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대량으로 매입하는 것은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는 일반적이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FRB(연준)의 총자산(2021년 1월 28일 기준, 총 7.47조 달러)의 약 63.6%는 미국 국채가 차지하고 있다. 또한,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의 총자산(2021년 1월30일 기준, 총 709조엔)의 약 75.6%는 일본 국채가 차지하고 있다. 참고로 한국은행의 총자산(2019년 12월31일 기준, 총 492조원)에서 한국 정부가 발행한 국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3.3%에 불과하다. 즉, 일본은행이나 FRB는 대량의 자국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를 보유하고 있지만, 한국은행은 한국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를 거의 보유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차이점은 미국이나 일본이 경기부양을 위해 대규모 양적 완화를 시행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은행이 국채를 직접 인수하는 것은 타당한가?
중앙은행의 대량의 국채 인수는 심각한 인플레이션, 대외 신인도 저하, 국채금리 폭등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시장에서 정부가 원금상환을 보증하는 국채의 채무불이행 가능성을 의심한다면, 이는 재정파탄과 금융불안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일본은행은 국채 매입에 대해서 재정 적자를 충당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며, 어디까지나 통화정책상의 중요한 목표인 디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하락) 탈출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미 달러나 일본의 엔화는 기축통화의 지위를 가지고 있지만, 원화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에도 유의해야 한다.
코로나19 위기 대응을 위해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중앙은행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중앙은행의 국채 매입이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통해 재정 적자를 충당하는 것으로 대외적으로 인식되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경계해야 한다.
박성빈 아주대 일본정책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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