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준비되었는가

둘째 아들이 태어나 행복을 안겨 준 좋은 날이 있는 4월. 그런데 유독 필자의 기분을 가라앉게 하는 달이기도 하다. 4월에는 정치·경제적으로 가장 많은 이슈가 있다.

제주 4ㆍ3사건, 4ㆍ15 제암리 학살사건, 4ㆍ16 세월호 참사, 4ㆍ19 혁명 등 거기에 요즘 미얀마의 유혈사태 소식이 있어 더 그런가 보다. 그래서인지 유독 4월, 여러 모양으로 우울하다.

얼마 전 80대 중반인 부모님을 모시고 50대 중반 형제들이 가족회의를 했다. 부모님께서 임종하면 어찌할까. 거동 잘하고 계시는 부모님 앞에 모시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죽음을? 순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먼저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는데….

부모님은 서울과 경기지역에 사는 자식들이 왕복에 힘들어할까 걱정된다며 거창에 있는 선산을 내려놓으셨다. 필자는 부모님의 죽음이 아직 실감 나지 않지만, 죽음에 초연하신 부모님을 바라보며 교훈을 얻는다. 손자 볼 나이인 필자는 지금도 부모님께 부모 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경기도 근교 왕복 1시간 거리에 있는 추모공원 가족 수목장으로 8명에서 12명이 이사 갈 수 있는 가족묘를 택했다. 사람이 태어나면 반드시 일어나는 일이지만 아직은 머리로만 아는 죽음이다. 갑자기 부모님에 대한 죄스러운 맘과 함께 울컥 뭉클함이 몰려왔다. ‘이별’은 단어만으로 서글프다. 과연 나무 아래로 소풍 가듯 다녀올 수 있을까?

필자의 지인 중에 15살 학생은 성적 비관 자살로, 20살 대학생은 교통사고로, 36살 주부는 우울증과 의처증에 시달려, 47살 사업가는 스트레스로, 먼저 떠났다. 그럴 때마다 그런 현실이 필자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의욕이 사라지고 인생이 허무해서 필자의 삶조차 내려놓고 싶은 심정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죽음 또 다른 탄생을 의미하듯 산 사람은 잘 살아내고 있다.

죽음은 두려운 존재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후대와 연결되어 천년만년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식물이 자라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차가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온다. 순리이고 당연함 속에 희생이 있다.

열매 속 씨앗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끈이 되듯 사람도 자신의 운명을 본능처럼 알 수 있다. 단지 외면하고 싶을 뿐이다. 탄생만으로 자손을 낳아야 하는 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이다.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기억해야 한다.

2년 전, 하늘나라로 먼저 보낸 동생을 또 가슴속에서 꺼냈다. 그 당시 준비 없이 맞은 죽음에 우왕좌왕했었다. 탄생을 준비하듯 죽음도 준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말이다.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긴 필자가 부모님 덕분에 죽음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됐다. 이제 필자는 준비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가슴 한편이 뿌듯하고 든든하다. 아마도 이는 내 속에 죽음이 삶과 공존하기 때문이리라.

김양옥 한국출산행복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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