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부산 ‘혹부리 영감’ 이야기는 씨름판에서 유래했나?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에는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인 사람’ 이야기가 구전설화로 전해진다. 다른 지역의 구전설화에는 ‘도깨비’가 등장하는 데 반해 부산에는 ‘장승’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옛날 옛적에 ‘혹부리 영감’은 길을 걷다 밤이 깊어지자 장승 밑에서 잠이 들게 되었다. 장승들은 집에 손님이 오셨으니 ‘헝송 공부’를 하자며 ‘헝송헝송’하였다. 잠에서 깨어난 ‘혹부리 영감’은 ‘허송 공부’도 아닌 ‘헝송 공부’라는 소리가 재미있어 그 소리를 따라 ‘헝송헝송’ 하였다. 장승들은 자신들의 ‘헝송 공부’를 잘 따라 한 ‘혹부리 영감’을 그냥 돌려보낼 수 없다며 그의 ‘혹’을 떼어주었다. 이 소문은 곧 마을에 전해지게 되었고, 또 다른 ‘혹부리 영감’은 자기의 ‘혹’도 떼어 보려고 장승 밑에서 잠을 청하였다. 장승들은 다시 손님이 오셨으니 ‘헝송 공부’를 하자며 ‘헝송헝송’ 소리를 하였다. 그런데 이 혹부리 영감은 그 소리가 우습다며 우스갯소리로 ‘헝송헝송’을 따라 하였다. 화가 난 장승들은 ‘혹부리 영감’이 자신들의 ‘헝송 공부’를 방해했다며 ‘혹부리 영감’에게 혹을 하나 더 붙여 주었다”라는 이야기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 의하면, 1927년 2월 임석재라는 사람이 구전설화를 채록하기 위해 부산 동래구의 ‘동래 공립보통학교’에 현지 조사를 나가서 듣게 된 이야기를 기록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채록하기 2년 전인 1925년 3월11일 동아일보에는 ‘씨름이 혹 떼어’ 그리고 ‘씨름도 이기고 귀찮은 혹도 떼어’라는 기사 내용이 있다.

‘부산 동래구 은천리에 거주하는 박차건이라는 사람은 몇 해 전부터 귀 뒤쪽에 큰 혹이 생기면서 바깥출입도 하지 못하고, 병원에 가서 고칠 수 있는 여건도 되지 못해 밤낮으로 노심초사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부산의 동래 온천장에서는 여관조합주최로 ‘경남씨름대회’가 열리게 되었는데, 박차건은 엉겁결에 씨름 구경을 하다가 자신도 씨름을 하게 됐다. 그런데 박차건은 씨름을 얼마나 잘하든지 연달아 다섯 명을 이겼다. 그리고 여섯 번째 사람과 경기를 하다가 넘어지면서 ‘혹’이 한방에 떨어져 나가버렸다. ‘혹’이 떨어진 박차건은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상으로 받은 은과 수건을 손에 들고는 가로 뛰고 모로 뛰는 광경이 참으로 일장희극을 이루었다’라고 신문에는 기록돼 있다.

약 100여년 전의 신문 기사이지만, ‘혹’ 때문에 남 앞에 나서지도 못하고 은둔생활을 하다가 우연히 씨름 때문에 상도 받고 ‘혹’도 떼어낸 박차건의 기사를 보며, 혹시 부산 동래의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인 사람’ 이야기가 ‘씨름판’에서 발생한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진 구전설화는 아닌지 생각해본다.

공성배 세계용무도위원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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