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우리는 왜 기다릴 수 없는가

“인종차별의 날카로운 화살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은 ‘기다려라’라고 말하기가 쉬울 것이라 생각합니다.(중략) 그러나 당신이 ‘니그로’라는 사실에 밤낮으로 괴롭힘 당하고, 매일 매일을 까치발을 하며 눈치를 보고 살고 있다면, 당신은 우리가 왜 기다릴 수 없는지 이해할 것입니다.”

1963년 4월 16일 미국 앨라배마주 버밍햄 감옥에 구금돼 있을 때 동료 성직자에게 보낸 ‘우리는 왜 기다릴 수 없는가’(Why We Can’t Wait)란 제목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편지다.

킹 목사의 노선에 찬성하는 일부 백인 온건주의자들은 급진적 방법보다는 “좀 기다려보라”는 말을 많이 했다. 킹 목사의 생각은 달랐다. 킹 목사는 이 편지를 쓰고 4개월이 지난 후 워싱턴에서 25만여 명의 지지자를 앞에 놓고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제목의 연설을 한다.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과 함께 미국 역사의 획을 긋는 위대한 연설이다. 링컨의 노예해방선언과 킹 목사의 편지와 연설에도 불구하고 흑인이 인권을 보장받고 차별에서 벗어나는 데는 수십 년이 더 걸렸다.

사람은 기다릴 때가 있다. 혹은 기다릴 수밖에 없는 때가 있다. 하지만 마냥 기다리라고 말하는 것은 희망 고문이다. 문재인 정권도 기다리라는 말을 많이 한다. ‘기다리면 경제가 회복된다’, ‘코로나 터널의 끝이 보인다’ 등 말이다. 기다린 결과 파탄 난 부동산과 세계 꼴찌권 백신 접종률만 남았다.

코로나 사태 초기, 백신 대신 세계 최초 코로나 치료약에 집착하더니 요즘은 감감무소식이다. 선거 패배 후에는 각종 지원금 준다는 소리도 쏙 들어갔다.

국민이 낸 세금이 구한 말 고종의 내탕금(內帑金, 왕의 개인재산)이라도 된단 말인가? 도대체 국민을 어떻게 보나?

나라를 이끄는 것은 사실을 사실대로 직시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현 정권의 상황 인식과 대응은 자해(自害)와 다를 게 없다. 첫 단추부터 잘못 낀 소득주도 성장, 탈원전, 부동산 역주행, 한미동맹 파국, 기업규제 강화, 청년 미래 파탄 등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펼쳐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과거 일본의 ‘잃어버린 20년’보다 더 참혹한 상황을 맞게 된다. 보궐 선거 패배에서 정신을 차릴 줄 알았는데 바뀌는 것은 없어 보인다. 우리가 기다릴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인재 건국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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