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질’을 분석하는 조사가 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의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가 전세계 40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조사다. 해당 국가의 의료 수준, 임종 관련 국가 지원, 죽음을 앞두고 방문할 수 있는 병원 수 등 20개 지표를 합산한 결과 한국은 2010년 32위, 2015년 18위를 기록했다. 표면적으로는 좋아 보이지만 속사정은 그렇지 않다. 그나마 순위가 오른 것은 우리의 의료적 치료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임종 환자나 죽음을 앞둔 노인들에게 물질적ㆍ심리적 안정을 주는 국가적 지원은 여전히 열악한 수준이라는 전문가들의 평가다.
반면, 죽음의 질 지수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국가는 영국이다. 영국 역시 처음에는 죽음에 대해 공개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가 주도해 ‘좋은 죽음’의 정의를 공론화하고 죽음을 금기시하는 문화를 서서히 바꿔왔다. 그 결과 ‘죽음의 질’ 조사에서도 1위 국가가 됐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 전반의 복지를 처음 시행한 영국은 이제 국민의 죽음과 그 이후까지도 사회적 안전망을 펼쳐놓으며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요약되는 ‘베버리지 보고서’를 완성하게 됐다.
영국의 사례처럼 우리도 이제 공적 영역에서 요람뿐 아니라 무덤까지 복지가 확장돼야 한다. 경제적으로 여유롭다면 죽음의 질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겠지만 평범한 서민에게 ‘죽음과 죽음 이후의 절차’는 절대 간단치 않은 문제다. 특히 최근 장례시설 자체가 부족해지면서 시설 이용료도 오르고 있어 공적 개입이 필수가 되고 있다.
‘죽음의 질’ 문제에서 안양시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3월31일 기준 안양시 전체 인구 중 노인 인구의 비율은 13.91%다. 노인 인구 비율 14% 이상인 고령사회가 코앞이다. 또한 안양시 소유 청계공설묘지는 2018년 9월로 만장돼 시민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종합장사시설 확보가 절실하다.
안양시는 일찍이 이러한 사태를 예견하고 민선 5기였던 2013년 장사시설 협업 설치를 화성시에게 처음 제안,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후 민선 6기 때 이 사업이 좌초될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민선 7기 시장에 다시 취임하면서 장사시설 설치 사업을 다른 사업보다 우선해 재참여를 추진하게 됐다. 안양시는 해당 사업이 안양시민에게 꼭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화성시뿐 아니라 부천ㆍ안산ㆍ시흥ㆍ광명시를 방문해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2018년 11월 모든 시의 동의를 얻어냈다.
이어 안양시의회와도 세심하게 소통해 2019년 10월 ‘함백산 추모공원 공동투자협약서 체결 동의안’이 의회를 통과했다. 우여곡절 끝에 오는 7월 함백산 추모공원이 개장하게 된 것이다. 안양시민의 숙원 사업이 빛을 보게 됐다는 점과 이 시설이 여러 지방정부가 힘을 모아 만들어 낸 보기 드문 ‘상생ㆍ협업 시설’로 평가받고 있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
안양시는 이번 함백산 추모공원 개원을 계기로 시민의 죽음과 죽음 이후의 복지에 대해서도 더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을 펼치고자 한다. 우리의 정서상 죽음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죽음도 결국 우리 삶의 일부다. 잘 사는 것 만큼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 함백산 추모공원이 혐오시설이 아닌 아름다운 공원으로 사랑받을 수 있도록 잘 유지ㆍ관리하고 죽음에 대한 시민의 인식과 문화를 바꾸는 일에도 앞장서 노력하겠다.
최대호 안양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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