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인권과 국제정치

인권이 국제정치의 주요 의제로 부상한 것은 2차 세계대전을 마무리하는 과정에 대량학살과 비인도적 잔혹 행위를 목격하고 이런 비극의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국제연합 총회가 구체적인 규범으로 선언한 것이다. 인류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갖는 고유한 존엄과 평등하고도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승인하는 것이 세계의 자유와 정의의 기초이며 인권의 존중이 평화의 출발이라는 것을 밝혔다.

전쟁은 폭력을 정당화하는 데서 시작하기 때문에 인간이 서로에 대해서 가져야 하는 기본적 존중과 지켜야 할 금기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세계인권선언이 보호하려는 인간의 당연한 권리는 구체적으로는 개인의 안전에 대한 권리, 시민의 자유, 정치적 권리, 경제적 생존권으로 이루어진다. 이 중에서 인간의 생명, 자유 그리고 신체의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다루는데, 그 이유는 폭압적인 독재나 전쟁 상황에서 국가 공권력이 독점적으로 보유하는 합법적 폭력을 이용한 살인을 정당화하기 때문에 시민의 자유나 정치적 권리 그리고 경제적 생존권은 돌아볼 여유가 없어진다.

우리 역사에서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의 침해사례는 제주 4·3을 비롯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에서 시민에 대한 무차별적 폭력 그리고 집권 후 군사 쿠데타 세력이 민주화 요구를 억압하려고 사법절차에 의한 사형집행, 고문, 실종, 불법적 투옥에서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침해는 역사의 오점으로 남았다. 현재 대한민국의 민주화는 국가가 국가폭력에 의한 역사적 오점을 인정하고 상처의 치유를 위해 인권을 확대하는 제도화의 과정이었다.

지난 2월1일 미얀마에서 쿠데타 이후, 이에 저항하는 시민에 대한 유혈 진압으로 5월 초까지 800여명이 사망하고, 4천800여명이 체포되고, 1천400명에게 수배령을 내렸다. 미얀마 시민군이 무차별 진압에 저항하는 과정에 무기를 탈취해 진압군인 30여명이 사망하자 미얀마 군부는 시위대를 폭도라고 부르고 유혈 진압을 정당화하고 있다. 종교갈등이 무력 충돌로 번진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 당국은 무장단체 하마스를 이스라엘 시민을 위협하는 테러 집단으로 규정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시민의 안전을 복원할 것이라며 팔레스타인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군사 공격을 테러 목표물에 대한 정당한 공격이라 주장했다. 국제사회의 중재로 극적인 휴전에 합의했지만, 양측의 충돌이 시작된 5월10일부터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를 1천180회 공습했고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로 3천200발의 포탄을 발사해 이스라엘은 12명의 사망자와 300여명의 부상자 그리고 팔레스타인은 232명의 사망자와 1천900여 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교전에 대한 국제규범은 자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내전은 물론 정당한 명분의 전쟁(jus ad bellum)이라도 전쟁을 수행하는 수단이 정당(jus in bello)할 것을 요구한다. 민간인과 군인을 구별해야 하며, 군사력의 사용에 비례의 원칙이 지켜져야 하고, 인종청소와 같은 반인륜적 목적이나 보복행위를 금지하며, 비인도적인 사악한 무기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지금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는 전쟁의 정의를 무시하는 비인도적 범죄다. 국제사회가 이를 내정 불간섭의 원칙으로 방치하는 것은 범죄를 방기하는 또 다른 범죄가 된다.

이성우 경기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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