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는 역사의 초고(草稿,초벌의 원고)다.”
워싱턴포스트 여성 발행인인 캐서린 그레이엄의 말이다.역사의 초고(First Draft Of History)라는 말은 저널리스트의 심장을 뛰게 한다.기자가 한 명의 역사가란 뜻이다.
캐서린 그레이엄 전에 이와 비슷한 말을 한 사람도 있었다. 1900년대 초 역사 현장의 기록은 대부분 역사가와 기자의 몫이었다.요즘은 페이스북이나 유튜브,트위터,블로그 같은 소셜미디어나 플랫폼들도 역사의 기록자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카는“역사란 역사학자의 숫자만큼 존재한다”고 말했다.중국의 동북공정을 보면 중국의 역사학자들이 협잡꾼보다 못한 인간들임을 보여준다.
이러니 역사의 초고를 자부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험난한 여정인지 알 수 있다.소설가 이병주는“태양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월광(月光)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고 말했다.
세상엔 수많은 자서전과 회고록이 즐비하다. “자서전과 회고록은 수치스러운 점을 밝힐 때만이 신뢰를 얻을 수 있다.”조지 오웰의 말이다.역사의 초고가 될 만한 자서전과 회고록이 몇 권이나 될까.
염동연 전 열린우리당 사무총장이 쓴‘둘이서 바꿔봅시다’란 책이 최근 발간됐다.노무현 정권 탄생에 관한 이야기다.그동안 시중에 나왔던 노무현 관련 서적과는 전혀 결이 다르다.
염동연은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정치인이다.꼭 역사에 남겨야 할 이야기만을 전하겠다는 자세로 썼다고 한다.
사실과 추측을 구분했고,진실이 아닌 것은 과감히 배제해‘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이유로 정권 탄생 비화도 충분히 역사의 초고가 될 수 있음을 확신했다.
우선,자화자찬이 없다.아무리 사실이라 해도 자랑이 앞서면 신뢰가 떨어진다.평가는 독자의 몫이기 마련이다.
둘째,실명으로 된 등장인물이 많다.개인의 프라이버시도 중요하지만 공인(公人)의 공과(功過)는 실명으로 나와야 한다.피해를 본 사람에 대해서는 저자가 책임진다는 얘기까지 한다.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셋째,장면과 대화가 마치 실시간 중계를 하는 것처럼 박진감이 넘친다.지금처럼 녹취가 흔한 때가 아니기 때문에 그때그때 기록을 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넷째,내용 못지않은 저자의 필력이다.수십 년 경력의 저널리스트보다 유려한 문체로 종횡무진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문질빈빈(文質彬彬)이란 말처럼 내용과 그것을 담은 그릇이 훌륭하다.
저자는 조만간 하권을 발간한다고 한다.천박하고 부끄럽고 자기 자랑 일색인 자서전,회고록,비망록 홍수 속에서 청량한 한 줄기 폭포수를 맞은 느낌이다.
이인재 건국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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