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작년 7월 13일 진드지 만델라(Zindzi Mandela)의 사망 소식을 발표했다. 넬슨 만델라의 차녀인 진드지 만델라는 고향땅 요하네스버그에서 영면하고 있다. 60년의 차가운 세월을 견디어 온 그녀가 팬데믹의 바람 속에 느닷없이 아주 먼 여행을 떠났다. 넬슨 만델라의 날인 7월18일 그녀는 먼저 간 선친을 회상할 기회를 잃었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후 313년 밀라노에서 기독교를 공인했고,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역시 모친의 영향으로 러시아 정교의 신앙심을 갖고 있으나, 남아공의 “진드지 만델라”는 유년기부터 부친 만델라의 영향을 다각적으로 받아 흑인 인권운동가로, 시인으로 성장했다.
‘제나니 들라미니’ 주한 남아공 대사의 여동생으로 주덴마크 대사를 역임한 진드지 만델라는 3세때 부친 만델라가 종신형을 선고받고 케이프타운의 로벤 아일랜드에 투옥되면서 유년기부터 고난의 여정이 시작했다. 부친의 석방을 위해 10대부터 반(反)아파르트헤이드 운동가로 변신했고, <난 흑인이지만>이란 시집을 발간하면서 시작(詩作) 활동도 병행했다.
진드지 만델라가 갑자기 우리와 작별하니 먼저 떠난 그의 부친이 떠오른다. 남아프리카의 현대사는 넬슨 만델라 개인사의 복제라 할 수 있을 만큼 굴곡이 심하다. 만델라는 1964년 그 유명한 리보니아 재판에서 종신형이 선고 되어 케이프타운의 로벤섬에서 본격적인 장기수로 수감 생활을 시작했다. 로벤섬에서 18년간 장기 투옥된 후 마르크스나 레닌의 혁명 서적 대신 영국 시인 윌리엄 헨리, 그리스의 시인이자 정치가인 소포클레스 등의 저서에 심취하였고, 장기수로 복역하는 동안 혁명가 지망생에서 평화와 통합, 화해와 용서를 생각하는 큰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수감 중에도 시간을 아껴 다양한 독서와 사색으로 폭넓은 식견을 보유하는 계기로 전환했고, 톨스토이 소설을 특히 많이 탐독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된 것은 만델라 불굴의 정신력과 함께 1970- 80년대 미국, 유럽, 유엔 등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고강도의 제재와 압력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흑인들의 집요한 저항에 직면한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은 국제사회의 고립으로 80년대 후반 옥중의 만델라와 비밀협상을 하면서 타협책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됐고, 만델라가 이때 극단적 파국 대신 상생의 공존을 선택함으로써 내란 대신 평화적 정권이양으로 전개된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1991년 노벨문학상 역시 남아공의 여류 작가 ‘나딘 고디머’(Nadin Gordimer)에게 수여됐는데, 아파르트헤이트의 참상을 고발해온 고디머는 만델라가 가장 특별히 생각하였던 인물이다. <왜 당신은 쓰지 않았는가> 등 많은 작품을 남긴 남아공의 대표 여류작가다. 넬슨 만델라도 쉬지 않고 글을 썼고, 그가 사랑한 딸 진드지도 잔인한 시간을 보내며 백지 위에 검은 글을 썼다.
최승현 전 경기도 국제관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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