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딱 한 권의 책

책을 딱 한 권만 갖고 무인도에 간다면 당신은 무슨 책을 갖고 갈 것인가?요즘 누가 책을 가지고 가나?휴대폰만 있으면 되지.어디까지나 가상의 질문이다.교회 장로인 내 친구는 당연히 성경이고,독실한 불자는 금강경이나 법화경일 가능성이 높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외국어 사전이라고 한다.어떤 외국어 사전도 상관없으며 무인도에서 그 외국어를 완전히 마스터하겠다고 말한다.나에게 단 한 권의 책은 무엇일까?고르기가 쉽지 않다.

살면서“아,바로 이 책이야”라고 느끼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설령 있다고 해도 다시 보면 뭔가 부족하다.미국 작가 토니 모리슨(1931-2019)은“당신이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아직 쓰인 게 없다면 당신이 써야만 한다”고 말했다.

말은 맞는데 책을 쓴다는 게 어디 만만한 일인가?오래전부터 책을 읽을 때마다 하는 버릇이 있다.공감하는 내용이 나오면 해당 페이지에 견출지를 붙인다.정말 좋은 대목이 나오면 노트에 기록한다.

이런 노트가40권이 넘는다.글을 쓸 때나 인용하고 싶을 때 아무 페이지나 펼친다.체계적으로 분류가 되지 않아 딱 들어맞지는 않지만 매우 유용하다.

‘라쇼몽(羅生門)’의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1892-1927)는 글을 쓰다 막히면 손에 집히는 아무 책이나 펼쳐보면 다시 쓸 수 있었다고 한다.심지어는‘딕슨영숙어사전’을 펼친 적도 있었다.

나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경지는 아니지만 그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학자든 작가든 자기가 전공하는 대상이 있다.주역이나 논어,사기나 자치통감,단테나 셰익스피어,칸트나 니체 등 다양하다.

자신의 전공이고,존경의 대상인 저작물을 아끼는 것은 당연하나 너무 천착한 나머지 맹신하는 경우가 많다.게다가 다른 책들을 욕한다.신뢰가 가지 않는다.맹자는“책 속에 있는 것을 다 믿는다면 책이 없느니만도 못하다”라고 말했다.

책을 읽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하지만 세상이 많이 변했고 특히 종이책은 쇠퇴일로다.책을 읽기에는 삶이 너무 팍팍하고 책을 읽어 무슨 득이 있겠는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책을 잘못 읽어 세상을 힘들게 하는 일도 많다.자치통감을17번 읽었다는 마오쩌둥은 수천만 명의 백성을 죽게 만들었지만 셰익스피어의‘리어왕’을 읽은 스티브 잡스는 스마트 혁명을 일으켰다.

책은 삶의 필수품이라고 주장하지만 고장난 나침반일 수 있다.인터넷에서 책에 대한 설명을 검색해보면 엄청난 포장과 상업주의로 범벅이 돼있다.알맹이 없는 내용에 휩쓸리게 되느니 안 읽는 게 낫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자칫 실천보다는 이론,행동보다는 말을 앞서게 만들 수 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라는 말보다는‘제대로 된 책을 읽어 나의 길을 찾아보려 한다’가 맞는 말이다.

딱 한 권의 책은 불가능하지만 나 자신을 바꿔보려는 노력은 가능하다.

이인재 동국대 법과대학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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