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확진자가 연일 네 자릿수를 기록하는 4차 대유행 속에 백신마저 무력화하는 ‘델타 변이’까지 우세종으로 자리잡은 상황. 외국인에 대한 차별에 더해 불법체류자(미등록 외국인)마저 통제하지 않는 ‘K-방역’은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숱한 외국인 집단감염 사태를 겪은 만큼 정부가 외국인 방역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내 체류 외국인 절반 “긴급재난문자 이해 못해”
방역 당국의 안내는 외국인을 배려하지 않고 있다. 공공기관을 통한 방역 관련 안내에서 주로 사용되는 언어가 한국어 외엔 영어, 중국어 정도에 그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이주노동자가 태국, 네팔, 파키스탄 등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넘어온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 실효성에 물음표가 찍힌다.
실제로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에서 서울ㆍ경기지역 이주노동자 307명을 대상으로 차별 실태를 조사한 결과, ‘재난문자를 이해할 수 없다’는 응답은 지난해 7월 43.2%에서 같은해 11월 52.6%로 늘어났다. 특히 37%는 한국에서 코로나19 관련 정보를 습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응답했다.
■도시 하나만큼 뚫린 방역 구멍…백신마저 차별
불법체류자의 규모(40만명)는 국내 체류 외국인의 20%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정부와 지자체는 방역대책의 기준을 각 기관에 두고 있어 외국인 방역망의 구멍을 자초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질병관리청은 불법체류자도 보건소에서 관리번호를 부여받아 접종할 수 있다고 안내한다. 그러나 영어를 제외한 외국어 정보는 없고 불법체류자는 안내를 받을 통로조차 없다. 결국 지난 5월 코로나19 고위험군(1957~1961년생)의 백신 사전예약에서 외국인 예약 이력은 없었다. 방역 당국은 이를 백신 미동의자로 분류하며 오는 10월에나 예약이 가능하다고 발표했다.
경기도는 백신 자율접종 대상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불법체류자)와 재외동포비자(F-4) 소지자를 아예 배제했다. 도는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접종하는 게 목표라면서도 한정된 물량과 짧은 조사기간 내에 개인정보 조회가 가능한 대상을 선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가적 재난 위기…불법체류자 양지로 끌어내야”
코로나19 사태가 국가적 재난 위기로 자리잡은 만큼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불법체류자에 대한 문제를 양지로 끌어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고기복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운영위원장은 “법무부에서 불법체류자도 진단검사를 받으라고 말은 하지만, 페널티를 면제해주는가에 대해선 확답을 주지 않고 있다”며 “불법체류자는 신분을 속일 여지가 많고 애초에 진단검사를 받고자 병원이나 보건소를 찾는 일 자체가 드물다”고 꼬집었다.
의료계 의견도 비슷하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교수는 “찬반의 여지가 있겠지만 불법체류에 대한 불이익을 면제해주고 방역체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코로나19 종식에 가까워지는 길”이라며 “백신접종도 (불법체류자에 대한) 익명 접종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조언했다.
구재원ㆍ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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