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 시간을 10분 앞둔 평택시 소사벌상업지구내 먹자골목이 한산한 모습이다(왼쪽). 같은 날 오후 10시께 충청남도 천안시 두정먹자골목이 젊은이들로 붐비고 있다. 조주현기자
정부가 수도권을 대상으로 거리두기를 강화하고 나섰지만, 비수도권에서 ‘원정 술자리’를 갖는 등 꼼수가 만연한 것으로 드러났다. 4차 대유행을 끊어내지 못한 정부의 방역 대책이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새로운 거리두기가 처음 적용된 지난 23일 오후 7시께 이천시 장호원읍의 한 먹자골목. 이른 술자리를 마친 중년 남성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장호원교 앞에 모였다. 도보 2분 거리의 130m짜리 다리를 건너면 4명이 모여 오후 10시까지 음주를 즐길 수 있는 충북 음성군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7년째 호프집을 운영하는 이애영씨(58ㆍ여)는 “다리 하나만 건너가면 오후 10시까지 술을 마셔도 되니 사람들이 죄다 저쪽(충북 음성군)으로 넘어간다”며 “바이러스가 경기도에서만 퍼지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누구를 위한 방역인지 모르겠다”고 혀를 찼다.
정부는 내달 5일까지 현행 사회적 거리두기를 2주 연장했다. 4단계가 시행되는 수도권은 오후 6시 이후 2명까지만 모일 수 있고, 다중이용시설 영업은 오후 9시까지로 1시간 단축됐다. 3단계가 적용되는 비수도권에선 시간 구분없이 4명까지 모임이 허용되며 오후 10시까지 식당ㆍ주점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거리두기가 다르게 적용되는 경계지역에서 술자리 원정을 떠나는 등 ‘방역 꼼수’가 등장하고 있다. 오후 8시30분께 평택지역은 이천보다 심각했다. 평택대학교 주변 상권과 소사벌 사거리를 비롯한 번화가에선 초저녁부터 택시들이 몰려 들었고, 기사들은 ‘천안 점프가 가능하다’며 승객들을 끌어모았다.
택시에 올라탄 20대 무리의 뒤를 따라 15분 만에 도착한 곳은 충남 천안시의 두정먹자골목. 이곳에서 코로나19는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주점마다 굉음에 가까운 가요가 우퍼를 통해 크게 울려퍼졌고, 거리 위엔 개미 떼처럼 인파가 북적였다. 월요일이 주는 피로감도 쏟아지는 빗줄기도 이들을 막을 순 없었다.
평택에서 천안을 찾은 김정윤씨(21ㆍ여)는 “정해진 시간대로 움직인 건데 뭐가 잘못됐느냐”며 되레 역정을 냈고, 수원에서 지하철 1호선으로 두정역까지 내려왔다는 안대호씨(24)는 “거리두기를 강화한다고 해봤자 확진자가 많이 나오는 건 수도권이니 이곳에서 노는 건 상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번화가 중심에 위치한 한 대형주점은 230㎡ 면적의 공간에 무려 43명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음주가무를 즐겼다. 거리두기는 찾아볼 수 없었고 마스크 없이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도 쉽게 포착됐다. 매장마다 출입문에 ‘수도권 방문자 및 거주자 출입금지’라는 안내문까지 붙어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김우주 고려대 감염내과 교수는 “새로울 것 없이 거리두기를 2개월 가까이 지속하고 있지만, 매일 2천명에 달하는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며 “원정 술자리가 만연하게 벌어진다는 건 이미 거리두기를 짧고 강하게 할 타이밍을 놓쳤다는 반증”이라고 꼬집었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도 “시간이나 공간을 제한하는 형태의 거리두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참여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효과가 감소할 수밖에 없다”며 “수도권에 대해 영업시간 제한을 단축했지만, 오히려 충청도ㆍ강원도 등 인접지역으로 넘어가는 풍선효과만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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