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경제] 공정한 계약질서 위한 ‘국가계약법 개정’을 기대하며

현대사회는 AI, 스마트 기술, 전자화폐, 확장 가상 세계 등 치열한 첨단기술 경쟁으로 흡사 전쟁터와 같다. 이러한 산업 속에서의 상생 발전은 신뢰와 믿음을 기반으로 한 공정 계약과 거래가 이뤄져야 한다.

계약이 불공정하거나 한쪽으로 치우치면 신뢰와 믿음이 깨지고, 불신으로 인한 사회 경제 구조는 허물어진다. 무한 기술 경쟁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동반 성장은 정부, 대기업, 중소기업이 각자의 역할에서 힘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20세기 초 근대 철학에 기초한 현재의 국가발주사업 계약 형태는 민간(원ㆍ하도급 혹은 갑을 계약 관계)에 위임함으로써 갑의 위치가 비대해져 불공정하게 변모했다. 약자를 착취하는 도구가 됐고, 시대가 요구하는 ‘소통 기반의 융ㆍ복합 협업의 수평적 산업 구조’의 혁신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원인은 1995년에 제정한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국가계약법)’에서 계약 공정과 공익에 대한 현대민법 법리가 누락, 사업수행 주체(민간의 원도급과 하도급) 간의 지위 남용으로 인한 불법ㆍ불공정 행위를 국가가 방치한 결과로 해석되고 있다. 특히 계약과 거래에 대한 사후 제재 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이에 대한 사전 예방 기능 부재로 그 역할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 왔다.

그 결과 수많은 산업 현장에서는 불공정 계약에 의한 불법 행위가 보편화됐고, 이로 인한 갑ㆍ을 경제 구조는 더욱 피폐해지고 있다.

경제적 강자의 지위 남용으로 인해 약자의 자기 결정 결과에 대한 피해는 법적으로 보호돼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질서 재정립 여건의 미비로 경제적 강자의 지배가 반사회적 불공정을 초래하는 사회적 갈등이 만연했으나, 1970~80년대에 이르러 ‘계약 공정(Vertragsgerechtigkeit)과 공익 추구’ 법리를 국가 책무로 추가, 경제적 강자의 지위 남용이나 반사회적 법률 행위에 대해 국가가 계약 이행 절차에 직접 개입하는 ‘예방하는 책임 제도’를 강행 법규로 제정했다.

우리나라의 현행 국가계약법은 사적 자치권 침해를 우려해 근대 법리인 ‘계약 자유’만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경제적 강자가 경제적 약자를 상대로 무제한의 불공정 계약을 허용한다면 이는 공정한 법이 아니다.

‘사적 자치’란 각 개인의 법률관계 형성을 당사자 간 의사 결정에 따르고, 국가나 법기관은 여기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거나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계약 자유’란 당사자 간 형성된 합의가 법적 구속력을 가지므로 힘의 불균형에 의한 자치권 침해가 있을 경우는 객관적인 법기관으로부터의 법질서를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이 전제돼 있다. 그러나 현행의 국가계약법에서는 이러한 불공정 계약에 대해 약자 보호를 위한 국가의 사전 예방적 관리 책무가 보이지 않는다. 이 법이 강자만이 유리한 법으로 작용한다면 이는 불공정을 유도하는 ‘악법’이 될 수 있다.

국가계약법에서 이러한 결함이 있는지 알고 있는 공공기관, 국민, 기업은 과연 얼마나 될까. 지난 2월 늦게나마 국가계약법에서의 불공정 계약과 거래를 방지하기 위한 ‘국가의 사전 예방 책임제도’를 도입하는 법 개정을 대한건축학회 등 32개 건설 관련 단체가 공동으로 우원식 국회의원실에서 제안, 발의했다.

진정한 공정 사회와 경제 실천을 위해 이 법 개정안의 통과와 함께, 정부 발주 사업 등에서 수급 주체자 간의 공정 계약과 거래가 국가책임제도 하에 이뤄질 수 있도록 해외 선진기법인 ‘종합사업관리제도(Program Management Consultants)’ 도입을 건의한다.

오상근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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