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다는 것. 폭이 매우 넓은 표현이다. 시간과 공간과 관계 같은 인간사부터 천지개벽처럼 우주의 일에까지 쓰이는 까닭이다. 그뿐인가 한 세계를 열었다는 등 예술과 학문의 개화니 개척에도 두루 쓰인다.
‘아침을 열면서’에 따라나온 생각 열기다. 아침을 연다고 하니 하루의 개시도 더 신선해진다. 시작이 좋으면 하루가 좋을 수 있고, 그런 날이 여일하게 이어지면 일생이다. 예부터 마당을 정갈히 쓸며 아침을 열어온 것도 그런 생의 마중이 아니었을까. 어머니들이 아침 든든히 먹여 내보내는 것 역시 하루 개시에 대한 무언의 응원일 것이다.
흔히 마음에도 연다는 표현을 쓴다. 거기서 시작에 대한 일종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우선 내 마음을 열어야 상대도 열 준비를 하는 것. 그렇게 상대를 더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문을 서로 열어 보임으로써 소통의 길도 훤히 트는 것이다. 물론 마음을 열더라도 여는 정도의 넓이나 깊이에 따른 이해의 심급은 달라지겠지만.
귀도 연다는 표현을 입을 때가 많다. 여닫을 수 없는 귀를 연다고 하면 어떤 태도를 함축한다. 귀를 여는 게 곧 마음을 여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귀를 여는 것은 무엇보다 귀담아듣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내포한다. 상대의 말부터 경청해야 마음을 여는 의미도 사니 말이다. 경청의 자세는 남의 말 듣기보다 내 말하기 바쁜 세상이라 점점 귀해 보인다. ‘귀는 둘이요 입은 하나’임을 익히 알 건만, 잘 듣기만도 그리 쉽지는 않은 것이다.
귀를 여는 것은 세상 만물의 말도 듣는 일이다. 풍진 세상에 나와 같은 시공간을 살아가는 뭇 생명의 말을 듣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오늘 아침 길에 나서며 무엇을 처음 만났는가. 맨 먼저 얼굴에 닿은 게 삽상한 가을바람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하루를 같이 여는 자동차라고 할 수도 있겠다. 늘 같이 아침을 여는 세상의 많은 동행들 수고 속에 일상이 돌아간다.
연다는 것을 톺아보니 새삼 넓은 의미를 발휘한다. 그만큼 무엇인가를 잘 연다는 것은 큰일이다. 특히 새로움을 열고 싶다는 것은 간절해서 더 어려운 일이다. 어느 분야나 새로움이 양식인 세상에 그 새로움을 열어내기가 점점 힘든 것이다. 글쓰기만 봐도 새로움에 대한 열망이 강할수록 무력감이 커진다. 게다가 자기 복제에 대한 두려움까지 데려오기 일쑤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오늘을 또 시작하는가. 쓰기를 닫고 싶다가도 쓰기로 다시 아침을 연다.
무릇 여는 것은 새로운 출발이다. 한 세계를 여는 것도 거기서 비롯된다. 마음 열기로 좋은 연을 만날 수 있고, 귀 열기로 좋은 작품을 얻을 수 있다. 여는 자세를 견지할 때, 바람의 말이나 외진 고샅의 신음도 들을 수 있다. 그것이 어려워도 잘 열면 잘 나가니, 직전의 고역쯤은 일용할 양식이다. 연다는 것, 그 새삼스러운 귀띔과 바람에 설레는 가을 아침이다.
정수자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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