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문화도시의 사회적 가치, 문화민주주의

올해는 할아버지 묘를 찾는 일이 잦아지면서 제주도를 분기에 두 번 정도는 간다. 할아버지가 사신 흔적을 찾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옛 집터를 중심으로 동심원의 올레길을 나름 개척하고 있다. 산책자로서 인근 지리와 문화지형에 대한 이해가 생기면서 서귀포문화도시 센터장을 맡은 후배에게 연락하게 됐다. 과거에 문화정치를 주제로 같이 공부를 했던 사이라서 둘이 만나면 식사를 하든 차를 마시든 자연스럽게 문화도시가 화제로 떠오른다. 서귀포시는 자연 그대로의 삶이 묻어나는 ‘105개 마을이 가꾸는 노지(露地) 문화 서귀포’를 비전으로 삼는다. 제주도는 촌락의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어 마을의 생태적 문화가 온존하고 있기에 적절한 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 인류학자 더글라스(Mary Douglas)에 따르면, “살아 있는 생물체 중에 오로지 인간만이 자기 환경을 적극적으로 조성하며 오로지 그들만의 환경이 문화적 건립체(cultural construct)이다.” 즉, 인간은 사회적 힘의 지배나 적용을 받는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사회적 환경을 구성하는 적극적인 주체다. 예컨대 독립운동의 역사성을 재해석함으로써 시민의 문화 자주권이 실현되는 문화독립도시 ‘천안’, 철강 산업 종사자를 위한 ‘문화 3교대’를 마련하고, 생활 속 영웅을 찾는 ‘철인 프로젝트’의 철학문화도시 ‘포항’, 시민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문화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말할 수 있는 도시, 귀담아듣는 도시의 생활문화도시 ‘부천’ 등에서 보여주듯이 문화는 사람들이 모여서 어떻게 자신의 관계를 정립하고 어떤 사회적 가치를 지향할 것이며 총체적으로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에 대한 그들 나름의 해답을 내포하고 있다.

근래 ‘먹고 살만한’ 처지가 되었지만 여전한 교육열과 부동산 투기를 보면 아직도 개인적·국가적 관심사는 더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욕망하고 추구하고 있다. 이것을 보면서 우리는 과연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하려는 정치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다행스럽게도 문화도시는 사람들 간의 사회관계와 가치의 상호작용에 의해 한층 고양된 생활방식에 대한 문제인식을 설정한다. 이것이 총체적 생활방식(way of life)을 새롭게 재구성하도록 마중물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노지 문화 서귀포의 추진과정을 들여다보면, 문화도시는 마을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고, 사회적 계층이나 지위의 고하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문화민주주의의 제도 환경을 조성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현광일 더좋은경제 사회적협동조합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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