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경제약자 보호하는 지역화폐, 예산 삭감 철회해야

한병환(56) 전)청와대 선임행정관
한병환(56) 전)청와대 선임행정관

모든 상품을 판매한다는 백화점ㆍ대형마트에는 없지만 동네 작은 가게에는 꼭 있는 광고가 있다. ‘재난지원금 사용 가능’, ‘지역화폐 환영’.

다소 촌스럽지만 손 글씨로 꾹꾹 눌러쓴 지역사랑상품권 광고에는 생존을 위한 소상공인ㆍ자영업자의 간절함이 절절하다.

그동안 K방역의 성과는 자영업자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재난지원금과 지역화폐는 어려운 소상공인ㆍ자영업자를 위한 매출증대 방안이다. 그런데 기재부는 2022년 지역화폐 예산을 전년 1조 522억원에서 2천 403억원으로 약 77% 삭감했다. 총 예산이 전년보다 8.3% 증가해서 604조4천억원으로 늘어난 것과 완전 대비된다. 삭감이유를 코로나 상황에서 한시ㆍ예외적 증가였고, 예년 수준으로의 정상화라고 한다. 내년부터는 팬데믹 위기 이전 상황으로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기재부의 설명에 귀를 꽉 막고 국민의 소리를 듣지 않는 오만함이 느껴진다.

지역화폐 정책은 축소가 아니라 오히려 지속적인 확대가 필요하다. 지역화폐의 순기능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소득불균형을 보정한다. 지역화폐는 백화점·대형마트에서 사용이 불가능하다. 대기업 중심의 유통구조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옥죄는 약육강식 현실에서 경제 약자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장치인 셈이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 2020년 연구에 따르면, 지역화폐 가맹점은 지역화폐 도입 후 월평균 매출액이 87만5천원(3.4%) 증가했으나, 비가맹점은 8만6천원(0.4%) 감소했다. 한시적 특수를 감안하더라도 추가적 매출이 발생했고, 동네중심의 소비패턴으로 변하고 있다.

둘째, 지역 소득이 수도권으로 유출되는 것을 방지한다. 2017년 기준 비수도권 지역의 소득 역외유출 현황을 살펴보면, 충남 -28%, 경북 ?16.7%인 반면, 서울은 54.7%에 달한다. 체감하듯이 지역의 돈은 씨가 마르고 있다. 지역화폐를 발행하는 지자체 수와 규모는 2017년 56곳 3,065억원에서 2021년에는 232곳 20조원 이상으로 폭발적 증가가 예상된다. 군산시는 2019년 6월 관내 금융기관 수신고가 전년 대비 4,300억원 증가한 사실에서 지역소득의 역외유출 방지효과를 추론할 수 있다. 지방 재정자립도를 높이는 지원군 역할을 하는 셈이다.

셋째, 소비자의 구매력을 증대시킨다. 지역화폐 구매금액보다 10% 정도의 충전을 더해주시기 때문이다. 캐시백 행사, 다양한 이벤트가 더해지면서 소비자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얻고 있다. 소비자에겐 더 없이 매혹적인 상품이다.

결국 지역화폐는 지역 안에서 소비를 늘리고, 소상공인ㆍ자영업자의 매출 증대만큼 지자체의 세수를 늘린다. 수도권 중심의 소비를 억제하면서 대형마트에 골목상권이 맞설 환경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중산층과 서민들의 경제활동에 도움을 주어 경기 진작은 물론 경제구조를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이처럼 지역화폐는 국가경제에 매우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 한국은행 인천본부, 경기연구원 등 많은 기관의 연구결과도 이를 입증한다.

코로나 방역에 협조하면서 모든 것을 감내해온 소상공인ㆍ자영업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서라도, 지역화폐 예산을 대폭 삭감한 2022년 기재부의 예산안이 대기업의 입김 때문이라는 세간의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지역화폐 발행 예산은 확대해야 한다.

큰 종을 조각내서 훔치려는 도둑이 내려친 망치로 종소리가 크게 나자,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도록 자신의 귀를 틀어막았다는 옛 이야기가 떠오른다. 성난 국민의 목소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자기 귀를 막아버린 기재부, 절박한 지역 현실 알리기에 소극적인 지방정부는 지금 당장 행동에 나서야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한병환 (前)문재인정부 청와대 자영업비서관실 선임행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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