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현장 지휘관의 판단이 존중받는 조직

“현장 지휘관의 판단을 존중해 주십시오.”

동인문학상을 받은 <칼의 노래(김훈ㆍ2001)>를 보면 부산 앞바다에서 대기하다가 바다를 건너오는 가등청정(加<7C50>淸正)의 부대를 요격하라는 명령을 받고 이순신 장군이 권율 도원수에게 이렇게 대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 이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조정(朝廷)의 명령을 적극적으로 받들지 않았음을 볼 때 이순신 장군도 아마 현장 지휘관의 판단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새로이 통제사가 된 원균 장군도 부산으로 들어가서 싸우는 것이 어렵다며 공격하기를 주저했다. 그러나 도원수에게 불려가 곤장을 맞는 수모를 당한 후 조선 수군을 총동원해 출전하게 된다. 이것이 칠천량 해전의 시작이다. 현장의 판단을 존중하지 않은 조정의 명령이 조선 수군의 괴멸로 이어졌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소방은 최근 20여 년간 가장 극적으로 변화한 조직 중 하나이다. 끊임없는 혁신으로 중앙부처의 일개 국(局)에서 소방청으로 발전했고 모든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으로 전환되는 성과를 이뤄냈다. 소방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변화를 돌아보면 감격스럽다. 그런데 한편으로 소방이 한 단계 더 올라가기 위해서 이제 내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는 생각이 든다. 그 중 하나가 현장을 중시하는 조직문화의 확립이 아닐까?

이는 어느 한 부분의 개선만으로는 달성될 수 없다. 현장이 중요하다면서 직원을 감시하는 기능만 강화하거나 현장의 자율권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상부 기관과 상사의 눈치를 보는 현상은 심해지고 각종 정책과 시스템은 오히려 현장과 멀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현장의 의견을 검증하지 않고 무조건 신뢰할 수도 없을 것이다.

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시스템 혁신과 구성원 모두의 능동적 참여가 필요하다. 현장 지휘관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스스로 역량을 높이고 자기 판단에 대해 책임질 수 있어야 하며, 지휘부는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를 존중해야 한다. 또 제도적으로도 이를 뒷받침해줘야 할 것이다. 조직 전체의 노력이 필요한 어려운 일이다.

명량대첩으로 다시 남해의 제해권을 장악한 이순신 장군이 노량에서 적에게 알리지 말라며 극적인 삶을 마감한 기일(음력 11월 19일)이 다가오고 있다. 백척간두에서 조선을 걱정하던 장군의 심정을 생각하며 소방의 앞날을 고민해본다. 현장 지휘관이며, 또 지휘부의 일원인 소방본부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임원섭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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