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꾼’의 발견과 이면

무슨 회의에 가면 직장(직업) 소개가 편치 않다. 명함을 주고받을 때도 좀 그렇다. 무슨 서류들 앞에서도 난감하긴 마찬가지. 시인이라 적기도 뭣한 직업란에 딱히 채울 것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왜 직책까지 적으라는지, 그런 관행의 속내는 알 수가 없다.

가끔은 ‘글꾼’으로 적어본다. 흔히 ‘글쟁이’라고들 하지만, ‘꾼’이 더 어울릴 법해서다. 일꾼, 농사꾼, 장사꾼, 살림꾼 등은 직업에 일종의 표식으로 꾼을 붙인다. 춤꾼, 소리꾼처럼 전문가 행위에 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즐기는 쪽에 능숙한 사람을 낮잡는 말로 술꾼, 노름꾼, 사기꾼이라 쓸 때는 편치 않을 수도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사랑에까지 꾼을 붙여 쓰는 판이니 ‘꾼’ 붙여 쓰기도 조심스럽긴 하다.

하지만 ‘꾼’이 요즘은 편한 높임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특히 소리꾼이 그러한데 방송의 높임 분위기에 따른 영향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소리꾼은 예나 지금이나 소리꾼이다. 그런 호칭이 다른 느낌을 환기하니 세간의 인식 변화도 돌아보게 한다. 무엇보다 한국 홍보 영상에서 국악의 색다른 매혹을 활짝 깨워낸 ‘이날치’의 공이 크지 싶다. 이날치라는 천하의 소리꾼 이름을 딴 것부터 자부심 어린 명명이라 우리 소리의 창의적 확장까지 바람을 얹어보게 된다.

일찍이 꾼처럼 ‘ㄲ’이 들어간 표현에 주목한 말이 있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꿈, 끼, 깡, 끈, 꾀’ 같은 ‘5ㄲ’이 있어야 한다나. 말놀이 같아도 가만 보면 바람직하고 필수적인 자질과 요소의 조합이다. ‘끈’이 우리 사회의 고질인 ‘~연(緣)’의 면면을 건드리지만, 좋은 연 만드는 능력(네트워킹)으로 보면 괜찮다. 한참 지나온 말인데 ‘ㄲ’의 나열이 볼수록 올차고 차지다. 이 모두의 합을 잘만 발휘한다면 진정한 ‘꾼’으로 우뚝 설 것 같으니 말이다.

젊은 소리꾼들을 안타깝게 보다가 꺼내본 생각이다. 풍류대장이라는 뜻밖의 이름을 단 모 방송국 프로그램의 소리꾼들 앞에 놀랐다. 소리에 바친 생은 절절해도 눈앞은 캄캄하건만, 소리를 위해 자신을 불사른다. 득음에 생을 거는 소리꾼들의 고난 행군 앞에는 변방의 글꾼이 무색할 지경이다. 특히 국악과 양악의 합을 통해 새로운 흥과 한과 가락을 펼쳐내는 꾼들의 신명에는 넋을 앗긴다. 국내보다 국외에서 우리 소리의 깊은 맛을 찾고 즐긴다는 현실은 씁쓸하지만. 이참에 얹는 것은 우리 소리의 더 폭넓은 향유와 드높은 활약이 터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리저리 보니 ‘꾼’이 새삼 크게 닿는다. 판소리의 이면 같은 것도 비친다. 득음까지는 멀어도 피맛 삭인 저만의 소리를 질러보는 꾼들. 어느 분야나 비슷하니, 글도 쓰고 버리고 다시 쓰는 기나긴 수행 끝에 자기 문체를 조금 얽게 된다. 끈기 없이는 꿈도 못 꿀 끼와 깡의 발현인 꾼, 그 앞에 새삼 글길 여미는 아침이다.

정수자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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