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여러 대중음악상 중 가장 오래된 ‘그래미 어워즈’는 태생적으로 보수적인 상이다. 수상작 선정 과정이 무엇보다 그렇다. 아메리칸뮤직 어워즈나 빌보드뮤직 어워즈, MTV비디오뮤직 어워즈가 팬 투표와 음반 판매량, 스트리밍과 차트 순위를 기준으로 ‘소비자’들의 선택에 따라 상을 준다면, 그래미는 음반제작자, 프로듀서, 가수들로 구성된 미국 레코드 아카데미 회원, 말하자면 대중음악 ‘제작자’들의 투표로 결정된다.
노래의 인기를 배제하고 음악성만 보겠다는 것이 출발이었다. ‘팔리는’ 음악보다는 ‘좋은 음악’을 지지하겠다는 고결한 선의였을 것이다. 헌데 바로 이 부분이 ‘대중음악’ 필드에서 대중과 선을 긋는 그래미의 이율배반이 되곤 했다. 특히 대중의 음악 소비 방식이 급격히 변화한 최근 수년간 끊임없는 수상 기준 논란에 시달려왔다.
논란의 역사에는 팝의 제왕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 프레디 머큐리와 에미넴 같은 빅스타들의 ‘무관’의 기록이 있다. 최근에는 비욘세, 카니에 웨스트, 저스틴 비버 같은 거물들의 그래미 보이콧도 적혔다. 2020년 전 세계가 열광한 싱어송라이터 ‘위켄드’가 후보조차 못 오른 이변에 세계가 경악했다. 전문가 그룹을 표방하지만 실은 이해관계로 얽히고설킨 후보 선정위원회 내부의 투표 압력과 뇌물 비리를 고발한 그래미 레코드 아카데미의 전직 CEO 사건도 있었다.
결국 그래미는 올 초, 후보 선정위원회를 없애고 1만1천여명 전체 회원의 투표로 후보를 지명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불발된 BTS의 올해 수상에 기대가 커졌다. 하지만 결국 작년과 같은 ‘베스트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에만 후보로 오르면서 미국과 전 세계 ‘아미’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AP통신, 포브스, LA타임스, USA투데이 등 유력 언론들이 일제히 그래미를 맹비난했다.
헌데 이쯤에서 생각해보면 그렇다. 그래미는 미국 팝음악 제작자 그룹이 그들 기준의 ‘음악성’을 평가한 노래로 줄 세우는 ‘로컬’ 음악상이다. 그럼에도 권위를 지녔던 것은 그들이 긴 시간 고수해온 가치에의 존중이었는데, 이것이 폐쇄성으로 왜곡 기능 하는 한, 그래미의 권위는 무의미해진다. 거듭 변화하는 대중의 음악적 관심과 소비 패턴을 따르며 글로벌한 시선으로 전세계 팝뮤직에 마음을 열지 못한다면 그래미는 ‘로컬’에 머물 뿐이다.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는 이제 오스카나 그래미 같은 ‘미국 상’에 ‘쿨’해도 될 수준과 위상을 지녔다. 오스카가 국제 영화제가 아닌 것처럼 그래미도 아시안이라서 보이그룹이라서, 아이돌이라서, 세계가 즐기지만, 그들 ‘동네’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로컬’ 음악상이라 그러는 것이라면 그러라고 하자.
그래미가 뭐라거나 말거나 코로나에 녹다운된 ‘로컬’ LA는 BTS 덕분에 뜻밖의 ‘30만 대군(아미)’의 방문을 맞았고 실질적인 경제 이익은 물론 계산 못 할 엄청난 부가 효과를 누렸다. 한인타운의 ‘아가씨 곱창’은 느닷없이 수천의 아미들이 ‘돈쭐 내는’ 성지가 됐고 그들의 선한 영향력에 힘을 얻는 아들 딸들 덕분에 10대와 부모세대들이 동시 접속 팬덤으로 뭉치는 기적이 미국인들 가정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내년 1월 혹시, 굳이, 그래미가 BTS에게 수줍은 트로피 하나를 내민다면, 겁 많은 동네 사람들이 고집 센 바리케이드를 선선히 열게 만들어버린 그들의 멋진 영향력에 대해서만 갈채를 보낼 일이다. 다른 ‘영광’을 말할 필요는 없다.
최주미 디지털 콘텐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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