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게 소송에 엮인 의뢰인이 있었다. 친척이 회사 인수계약을 체결하면서 매도인의 양해 아래 인수계약자란에 의뢰인의 이름을 썼지만, 금전과 토지, 채무인수 등으로 대금을 전액 지급하였음에도, 매도인이 의뢰인에게 인수대금 청구를 했다. 매도인은 소송구조를 통해 법률구조공단 소속 변호사를 소송대리인으로 한 반면, 의뢰인은 직접 재판을 하다가 “계약 당사자가 아니란 주장은 그만하고 변제 여부를 변론하시라”는 재판부 말에 화들짝 놀라 비로소 변호사를 찾았다.
필자는 복잡한 변제내역을 정리하고 채권이 시효 소멸했다는 새로운 주장을 했으며, 계약당사자가 아니란 주장은 가볍게 언급했다. 그러자 1심은 “의뢰인이 계약당사자가 아니고, 소멸시효도 완성됐다”는 판단을 내렸다.
매도인은 항소했다. 문제는 소송구조신청이 다시 받아들여져 돈 한 푼 안 들이고 소송을 또 할 수 있게 된 것. 복지 재원은 자활의지 없는 소송꾼들의 차지가 되어 선량한 시민을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소송으로 빠뜨리곤 한다. 법원이 기계적으로 소송구조를 받아줄 게 아니라 신청 횟수와 판결 내용을 참작해 신중히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이유이다. 변호사는 이럴 때 소송비용 담보제공명령신청을 고려한다. 민사소송법이 “청구가 이유 없음이 명백한 때 등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법원은 원고(소송을 제기한 사람)에게 소송비용 담보제공을 명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제117조), “1심 판결 후 비로소 원고 청구가 이유 없음이 명백함을 알게 된 경우라면 2심에서도 담보제공을 명할 수 있다”는 판례가 있기 때문이다(대법원2017마63).
소송비용은 실지급한 보수와 장차 지급할 성과보수금을 포함하되, ‘변호사보수의 소송비용 산입에 관한 규칙’으로 산출된 금액과 비교해 더 적은 금액을 기준으로 담보제공을 명한다. 1심 선고 후 청구가 이유 없음이 명백해 진 경우란 계약당사자가 아니거나 청구채권의 소멸시효 완성이 분명할 때를 예로 들 수 있는데, 결국 1심판결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 원고가 신용불량자라거나 소송구조를 받는다는 사정은 고려되지 않는다.
인용 사례에서 2심 법원은 의뢰인의 담보제공명령신청을 기각했지만, 대법원은 “1심 판결 선고 전에는 원고(매도인)의 청구가 이유 없음이 명백한 사정을 알기 어려웠다”는 취지로 2심 결정을 파기했다(대법원2020마5417).
법원의 담보제공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소각하 판결을 한다. 2심에서는 항소를 각하하며, 상고하지 않으면 1심판결이 확정된다. 남의 돈으로 소송을 계속 하려던 소송꾼은 예상대로 자비 부담을 요하는 담보제공명령을 이행하지 않아 항소각하 판결을 받았고 상고도 하지 않았다.
설대석 법무법인 대화(大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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