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경제] 논리와 힘

#유전법칙을 발견한 멘델은 수도사였다. 하지만 멘델은 성직보다 세속의 학문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그는 수도사로 일하면서 유전법칙을 발견한 후 당대의 이름있는 식물학자에게 자신의 연구 결과를 설명하는 편지를 몇 차례 보냈다. 하지만 그 식물학자는 무명의 아마추어 생물학자의 주장을 간단히 무시했고, 유전법칙은 수십년 후 재발견될 때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멘델은 학문의 미련을 간직한 채 수도사로 일생을 마감했다.

#A씨는 직장인 공공기관에서 정년을 맞았다. A씨 직장은 정년 연장 없이 임금피크제를 시행한 보상으로, 정년 후에도 약간의 보수를 받고 비정규직(명예직)으로 몇년 정도 일할 기회를 준다. 그런데 A씨가 퇴직하던 해 직장에서는 예산 부족이 우려된다며 명예직 월급을 1/4 삭감한다는 계획을 통보했다. 명예직들이 보기에 예산 부족 우려는 지나친 것으로 보였기에 관련 자료를 열심히 준비해 경영진에 설명할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며칠 후 A씨와 동료들은 애초 예정대로 삭감된 임금 계약서를 전달받았다. 현직들로만 구성된 노조는 명예직 임금 삭감에는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그 해 A씨 직장은 예산 부족이 아닌 대폭 흑자를 거뒀다.

사실에 기반한 훌륭한 논리가 있다고 해서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주장이 아무리 옳더라도 상대방이 설득되기 위해서는 내 말을 귀담아듣고 그 의미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상대방이 기울여줘야 가능하다. 내 주장으로부터 상대방에게 별다른 이익이 생기지 않는 경우 상대방이 그 정도의 노력을 기울이게 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힘이 필요하다. 특히 상대방이 갑이면 더욱 그러하다. 이는 고고해 보이는 학문의 세계에서부터 노사교섭의 장에 이르기까지 틀림없이 적용되는 세상의 법칙이다. 하지만 을의 입장에 서 본 경험이 없으면 이 법칙을 인식하기는 쉽지 않다.

입장이 서로 다른 쌍방의 만남에서 힘의 불균형이 존재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런 경우, 그 만남이 의미가 있으려면 을에게도 위에서 말한 정도의 힘은 주어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를 들어 노동자에게는 파업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

물론 세상의 만남에는 ‘을’이 그 정도의 힘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무명의 학자였던 멘델이나 비정규직 퇴직자인 A씨도 그런 경우다. 다만 이들은 그래도 형편이 나은 을들이다. 멘델은 학자의 꿈을 접어야 했고 A씨와 동료들은 조금 더 궁핍한 노후를 맞아야 했지만, 세상에는 이보다 훨씬 절박한 입장에 있으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달할 힘이 없는 을들도 많다.

그럴 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비명을 지르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생각하는 사실이나 논리, 혹은 나(우리)의 입장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비명이다. 그 비명의 몸짓으로,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평화시장의 젊은 노동자는 자기 몸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엄동설한이나 삼복더위 속에 철탑에 오르고 때로 목숨을 던진다.

강두용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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