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암 환자 지원 정책과 명의

‘국민건강’이란 개념은 그리 오래된 게 아니다. 중세까지 흑사병을 비롯해 주기적으로 출현한 돌림병이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지만, 대개 천벌이나 액운으로 받아들였다. 근대 국가의 성립과 함께 국민을 국가의 자원으로 간주하면서 국민의 건강이 중요해졌다. 돌림병이라도 돈다면 국가적 위기 상황이 발생한다. 숙련된 노동력과 국가 세원의 상실은 물론, 치료를 위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국가가 나서 보험방식으로 국민건강을 지키려는 이유다. 개개인의 건강을 보호하고 인력풀을 유지해 차별 없는 치료를 통해 국민 행복을 도모하자는 취지다.

인생 위기를 만나면 신을 찾고, 큰 병을 만나면 명의를 찾는다. 화타, 편작, 허준, 슈바이처 등을 떠올려 보면 편안하고 풍족한 상태에서 명의가 생겨나지 않았다. 반대로 열악한 위기 상황에서 천재가 발휘되어 명의가 등장한다. 김동인 ‘광염 소나타’에서 작곡의 천재가 발휘되려면 괴상한 범죄를 저질러야 한다. 천재를 위해 어디까지 희생해야 하는가? BTS 덕에 다시 떠오른 오멜라스, 지하에 작은아이가 고통을 견뎌야 마을 전체의 행복이 유지된다. 서로 정반대 상황이지만, 둘 다 용인될 수 없다.

한국으로 명의를 찾아오는 외국 환자들이 급증했다고 한다. 그만큼 한국에도 명의가 많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수련의들이 오멜라의 어린아이처럼 시달리는 것도 현실이다.

한국에서 의학 공부를 하고 다시 미국에서 전공해 의사가 된 사람들이 꼽는 미국행 이유는 대략 세 가지다. 첫째, 환자를 많이 봐야 돈을 더 받는 구조가 아니어서 워라벨이 가능하기 때문. 둘째, 레지던트 세계에서도 위계질서가 없는 수평적 관계 때문. 셋째, 연구 환경이 좋아서라고 한다. 수련의는 장래가 보장되었다는 점에서 대학의 시간강사, 직장의 비정규직과 다르다. 그렇지만 현재 겪고 이겨내야 할 상황만 본다면 그들보다 나을 게 없다. 왜 우리나라에서만 그들은 그렇게 혹독한 환경을 거쳐야 할까? 명의를 탄생시키기 위한 장치일까?

우리의 건강보험 체계에 대한 칭찬이 많다. 그런데 병원을 비롯한 의료시설은 민영이 대부분이다. 좋게 보면 균형이 잘 유지되는 것이고, 현실적으로 보자면 수가를 더 받아내야 하는 쪽과 되도록 아껴야 하는 쪽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환자들, 특히 암과 같이 중증 질환 환자들은 치료에 성공하더라도 또 사회적 적응에 여러 차원의 도움이 필요한데, 의료인의 도움을 받기도 어렵고, 보험에서도 더는 기대하기 어렵다. 국가는 지역 사회가 나설 수 있도록 제도적, 재정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또 하나, 의료 인력의 충원이다. 한사코 반대하는 의사들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행복을 지킨다고 애꿎은 어린애에게 고통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 의료 인력 충원 없이는 수련의의 오멜라스는 피할 수 없으며, 환자를 위한 다양한 의료서비스도 불가능하다는 사실 인정하기 어려운가?

김근홍 강남대교수•한독교육복지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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