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없이 발표부터 한 ‘급식종사자 건강진단’, 조용히 계획 바꿨다

급식종사자. 연합뉴스

고용노동부가 급식종사자의 폐암 건강진단 실시 방침을 발표(경기일보 8일자 1면)하고 뒤늦게 계획을 수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 당국이 ‘예산 미확보’를 이유로 난색을 표했기 때문인데, 충분한 사전 협의를 거치기 전에 섣불리 발표부터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2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노동부는 급식종사자에 대한 폐암 건강진단을 내년 8월까지 시행하도록 하는 지도 방침을 발표한 직후 ‘내년 중’으로 그 기한을 수정했다.

앞서 노동부는 지난 7일 학교 급식실 조리종사자 중 55세 이상 또는 조리업무 10년 이상 종사자에 대해 국가암검진에서 폐암 선별검사로 활용되는 저선량 폐 CT 촬영을 실시하도록 했다. 기름을 사용하는 튀김 등 메뉴를 조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조리흄’이 폐암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지목됐고, 실제로 폐암 진단 사례까지 속출했기 때문이다.

이 계획이 돌연 바뀐 이유는 예산이다. 경기도교육청의 경우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심의가 진행 중이며 오는 17일 경기도의회 의결을 앞뒀다. 본 예산에는 노동부가 세운 건강진단 실시에 필요한 예산이 편성되지 않았다. 반드시 추경을 거쳐 해당 예산을 확보한 뒤에야 건강진단을 실시할 수 있는 상황이다.

올해 2월 기준 도내 급식종사자는 1만4천600명(조리사 2천223명ㆍ조리원 1만2천377명)인데, 노동부는 전체 급식종사자 중 50~60%가 기준에 부합할 것으로 보고 있다. 폐 CT 촬영 등 건강진단에 인당 12만원 안팎 소요된다고 가정하면, 도교육청은 최소 8억7천만원의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결국 ‘죽음의 급식실’에 내몰린 급식종사자의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방침이 어렵사리 만들어졌지만, 충분한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은 탓에 그 일정이 다시 안갯속으로 빠져든 셈이다.

최진선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 경기지부장은 “건강진단 기준을 세운 것 자체는 긍정적인 일이지만, 시급한 사안을 놓고 사전 협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일정이 무기한 연기된 건 분명 문제”라며 “교육 당국도 예산을 이유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게 아니라 방법을 찾아 달라”고 말했다.

도교육청 측은 현재까지 추경 일정이 잡히지 않아 건강진단 시행 계획은 유동적이며, 노동부와 협의도 다 끝난 게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노동부 관계자는 “당초 계획을 내년 8월까지 세운 건 맞지만, 발표 전 논의 과정에서 교육 당국이 예산 문제를 들어 ‘내년 중’으로 일정을 바꾸게 됐다”며 “대변인실에서 해당 계획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미처 수정을 하지 못하는 등 소통의 오류가 있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장희준ㆍ김정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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