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올해도 유럽의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는 유난히 스산하고 끔찍할지도 모른다. 최근 ISIS가 유럽 주요 국가를 대상으로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테러를 선동하고 있어서다.
프랑스 크리스티앙 감독이 제작한 ‘메리크리스마스’라는 영화는 참혹한 전쟁에서도 뜻밖의 평화가 찾아올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1차 세계대전은 수많은 전투가 참호에서 벌어졌다. 당시 독일군과 영·불 연합군은 ‘마른전투’에서 교착 상태에 빠져 진격에 제동이 걸린 상황으로 양쪽의 참호전투는 12월까지 두 달이나 지속되었다.
성탄전야에 조용했던 독일군 진영 참호에서 갑자기 성탄 캐럴이 들려왔다. 이내 영국 병사들도 함께 부르기 시작했다. “우린 쏘지 않겠다, 너희도 쏘지 마라” 독일군 장교 한 명이 장식과 초를 매단 성탄 나무를 영국군 진영으로 가져 왔으며, 이후 두 나라의 병사들은 중간 지대에서 어울려 무기를 내려놓고 한 주 동안 휴전하였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크리스마스 휴전’ 이야기이다.
인류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 와중에 가장 평화스러운 휴머니티를 보인 사건이다. 인류가 어떻게 대립을 멈추어야 하는지 확실히 보여준 인류애의 참모습이었으며, 전쟁사에서 가장 놀라운 일화가 되어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 극단주의 테러단체의 무차별 테러가 계속되고 남북 간 종전선언이 논의되고 있는 지금, 중동과 미국, 그리고 유럽에서 ‘우리도 쏘지 않을 테니, 너희도 쏘지 말라’며 제안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 휴전과 평화가 우리에게도 가능할지 의문이다.
평화란 때때로 우리가 그것의 부재를 통해 인식하는 존재이다. 역사를 뒤돌아보면 인간의 어리석음과 탐욕은 늘 갈등과 파괴를 유발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전쟁과 테러의 이면에 있는 아픔을 기억하고 중요한 가치들을 지켜야 한다. ‘좋은 전쟁이란 없고 나쁜 평화는 없다’라는 명제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역사를 바라볼 때는 결코 파괴자들의 어리석은 탐구가 아니라 선한 희생자들의 덕목을 성찰해야 한다. 어쩌면 세계는 장군과 영웅들의 기여보다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합창한 참호 속 병사들과 같은 평범한 자들의 인물들이었을지 모른다. 부디 이번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그리고 새해에는 증오에 가득 찬 안보적 분쟁과 사생결단의 정치도 멈추는 ‘크리스마스 휴전’이 찾아오고, 더 큰 풍요, 안전한 더 나은 세상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이만종 한국테러학회장•호원대 법 경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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