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경제] 선진국 중앙은행의 변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Bank), 유럽 중앙은행(European Central Bank),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ank of England), 일본은행(Bank of Japan)은 전세계 4대 ‘중앙은행’으로 불린다. 이들은 각각 달러, 유로, 파운드, 엔화 등 국제간 결제나 금융거래의 기본이 되는 기축 통화의 발권 기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중앙은행들이 시장에 통화를 공급하는 부양정책이나, 반대로 통화를 흡수하는 긴축정책으로의 전환 여부에 따라 금융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지난 16일 영란은행은 4대 중앙은행 중에서 가장 먼저 기준금리를 0.1%에서 0.25%로 인상했다. 영란은행은 코로나19에 대한 학습 효과로 경기 하방 압력이 완화되는 등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에 관한 판단을 유보했다. 오히려 오미크론에 따른 병목 현상 해소 지연과 재화 소비 확대로 물가 상승 압력이 계속될 가능성을 더 주목했다.

미국 연준은 이에 앞서 15일에 기준금리(0~0.25%)를 동결하고, 양적완화를 애초 예고했던 것보다 빠른 내년 3월에 종료하기로 했다. 연준 성명서에는 ‘물가는 일시적’이라는 문구가 삭제됐고, 수요와 공급 불균형이 특정 산업에 한정됐다는 문구 역시 삭제됐다. 이에 더해 연준 위원들은 물가 전망 리스크가 상방, 균형, 하방인지를 묻는 설문에서도 18명의 위원 중 15명이 상방 리스크를 지목했다. 이는 전망했던 것보다 물가가 더 상승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가에 대한 문제 의식에 더해 연준은 향후 금리인상과 관련한 힌트를 내비쳤다. 파월 연준 의장은 그간 양적완화 축소와 금리인상은 ‘결이 다른 정책’이라는 점에서 양적완화 종료가 금리인상으로 해석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언급해왔다.

하지만 이번 기자회견에서는 “테이퍼링과 금리인상 간에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입장을 선회했다. 연준이 물가에 대해 분명하게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파월 의장이 평균 물가목표제도 도입 당시 지금과 같은 인플레이션을 예상하지 못한 판단 잘못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이미 금융시장 참여자들은 내년 연준이 최대 세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고 가격에 반영했기 때문에 이러한 연준의 변화된 심리가 당장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내년 3월 이후부터는 미국 연준이 언제라도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이 된 만큼 풍부한 유동성의 힘으로 상승한 자산 가격은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현재 실적보다는 미래의 성장기대로 인해 급등한 자산 가격들은 연준의 긴축 행보가 빨라질수록 부정적으로 반응할 확률이 더 높아진다.

대표적으로 메타버스, NFT, 가상화폐 시장 등이 해당한다. 이들 시장은 분명 무한한 성장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장기적으로는 큰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유동성이 풍부할 때는 산업의 성장 속도보다 가격이 더 크게 상승하며, 거품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긴 안목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가격이 정상화되면 오히려 기회가 될 것이다. 선진국 중앙은행의 변심은 위기이자 기회다.

오태동 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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