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이중으로 무는 얘기가 아니다. 설을 양력과 음력 ‘이중으로’ 쇤다는 ‘옛날 말’이다. 한 세기도 훨씬 전부터 양력과 음력은 명절에 충돌했다. 특히 ‘새해 첫날’로서의 설은 국가
미국사는 한인들에게도 설은 ‘선택적으로’ 두 번이다. 발 딛고 사는 땅의 새해 첫날은 명백히 양력 1월1일이고 공휴일이며 서로 축복하는 ‘해피 뉴이어스 데이’다. 하지만 한국과 탯줄로 이어진 한인들에게 한국에서 쇠는 설은 외면 불가 여전한 명절이다.
미국 사회도 음력 새해 첫날을 ‘루나 뉴이어’ ‘차이니즈 뉴이어’로 부르며 아시안의 명절로 주목한다. 그래서 한인들은 이래저래 자발적 ‘이중과세’를 한다. 과세라고 해야 조상을 모시거나 세배 순례를 나서거나 놀이판을 벌일 일은 거의 없으니 명절 먹거리를 가족과 나누는 것이 전부다. 명절은 그래서 그저 ‘먹는 날’이긴 하다. 새해 첫날에 떡국을 끓이고, ‘진짜 설’에 또다시 떡국을 끓이고 세배를 더하며 설을 치른다. 특히 한인타운이 있는 LA나 뉴욕, 애틀랜타 같은 도시에서는 타운 상점들이 먼저 분위기를 돋우고, 한인 마켓 가판대에 ‘이중’으로 두 번씩 진열되는 떡국 떡이 새삼 모국과 설의 향수를 자극하면 한인들은 뜨끈하고 걸쭉한 국물로 속을 덥히며 그렇게 맛있는 명절을 먹는다.
한국과 미국, 두 가지 삶의 정체성을 숙명처럼 지니고 사는 한인들에게 비슷한 명절, 비슷한 기념일을 두 번씩 치르며 그 의미를 새기는 일은 사실 일상이다. 5월8일이 되면 부모님께 어버이날 인사를 보낸다. 곧이어 미국식 ‘마더스 데이가’ 다음 달엔 ‘파더스 데이’가 찾아오면 또다시 부모님께 꽃을 선물하고 감사를 나눈다. 추석도 다르지 않다. 추석날에는 추석 먹거리로 송편을 한 접시 마련하고 추수감사절에는 터키와 함께 감사 기도를 나누며 두 차례의 ‘수확의 기쁨과 감사’의 가을 명절을 보낸다.
한국과 미국에 절반씩 나뉜 채 걸쳐 사는 삶이 아니라 양쪽 모두를 취하며 두 배로 키워 살 선택권이 있다는 건 나라 밖에 사는 한인들이라 가능한 나름의 특혜다. 귀성 전쟁의 고단함이, 가족 간 언쟁과 갈등의 고통이 명절의 대표 풍경이라는 씁쓸한 고백을 안다. 반복되는 명절 스트레스에 지친 한국의 며느리 사위들에게는 철없어 미안한 말일 것도 안다. 번잡한 명절의 의례와 구속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한인들에게 두 번씩 찾아오는 명절이 ‘맛있는’ 날일 수 있는 것은 하지만 거저 얻어지는 혜택만은 아니다. 어떤 이유와 어떤 사연에서 떠나왔건 감내하며 살아가는 모국에의 그리움과 회한, 때로 후회와 자책, 세포 속에 낱낱이 녹아 스며든 모국에의 회귀 본능을 견뎌내는 삶에 스스로 선사하는 작은 즐거움으로 선택한 결과다.
물러나지 않는 전염병에 너나 모두 많이 지쳤지만 그래서 더욱더, 꼬리를 감추고 숨어 안 보이는 소소한 기쁨을 찾아내며 한 해를 맞아보려고 한다. 한국의 설도 부디 다들, 그랬으면 좋겠다.
최주미 디지털 콘텐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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