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소 엉덩이 토닥이며 지난 한해 칼럼으로 게재한 글들을 돌이켜본다. 복지제도를 되짚고 노후 준비 필요성을 개인과 사회 그리고 환경의 연결성 차원에서 살펴봤다. 개인의 빈부는 개인의 노력으로만 결정되지 않고 사회제도와 환경이 결정요인일 때가 많다. 그래서 복지는 국가의 의무이지 시혜가 아니다. 그래도 우리 몫을 다하며 노후를 돌보며 사회와 환경도 함께 생각하면 좋겠다. 그다음 돌림병 역사를 살피며 개인 비용까지 동원하는 정조대왕을 보았다. 복지는 비용보다 투자다. 코로나로 잃은 것과 얻은 걸 새옹지마와 연결했다. 코로나 하나 때문은 아니지만 코로나 시국에 선진국이 됐고, 그사이 많은 사람이 위기에 내몰리고 심지어 병에 죽거나 스스로 목숨을 버리기도 했다. 정부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겠지만, 새옹지마 이야기를 인류 유산으로 남길 수 있던 유안처럼 있는 사람들도 나름 역할을 하면 좋겠다. 지난번엔 국민건강과 명의 이야기였다. 국민건강은 복지처럼 투자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명의가 훌륭하고 고맙지만 그렇다고 명의 만들자고 레지던트를 오멜라스의 어린아이로 만드는 건 안 된다.
한 곳 찌그려야만 다른 대부분의 곳이 빵빵해지는 바람 빠진 공이어서는 안 된다. 지금의 건강보험 수가 정책과 의료인 배출 정책으로는 환자는 환자대로 의사는 의사대로 전쟁이 불가피하다. 환자라면, 특히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면 죽기 전에 소위 빅5 병원이나 분당서울대 명의의 진료를 받아보겠다는 간절함으로 몇개월 기다리다 겨우 만나도 그 짧은 진료시간에 시원한 대답은커녕 갈증만 커진다. 한 명당 2~3분씩 봐도 시간이 모자랐다는 어느 명의의 절규(?)에서 장바닥에서 물건 거래하듯 의료 용역을 그저 거래 차원에서 대하는 병원, 그렇게 만드는 혹은 고치지 못하는 보험정책도 아쉽다. 누구나 환자로 삶을 마치는 세상이니 의사 잘 만나는 게 요행이다. 그보다 의사 모두 여유 있게 눈을 마주치고 환자 말에 귀를 기울이며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넬 수 있는 세상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검은 호랑이해에는 그쪽으로 좀 더 다가갈 수 있을까?
당사자가 되고서야 서운함이 고마움보다 앞선다는 걸 체험했다. 나름 명의쇼핑에 나서기도 해봤고, 보험의 모자람도 겪었다. 그간 구조와 체계로 보는 게 습관이었지만, 그런 아쉬움과 서운함을 겪고서 체계와 구조도 중요하지만, 그늘진 자리가 생긴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하겠다는 마음이 더 절실해졌다.
프로스트의 시 가운데, 노란 숲 똑같아 보이는 갈림길 앞에서 망설이다가 다 걸을 수 없어 하나를 선택한다. 화자는 나중이 되어서 되짚어 본 것인지 아니면 앞당겨 보는지 먼 훗날 그 길을 고른 이유를 만든다. 남들 발길 덜 탄 길이었노라고. 한숨 쉬며. 젊어서는 저 한숨의 의미를 몰랐다. 이젠 좀 알 듯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여유를 갖자.
세밑에 아쉬움으로 손이라도 흔들어볼까 싶었는데, 허, 범이 내려오고 있구나!
김근홍 강남대 교수ㆍ한독교육복지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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