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공과 지수는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 고사(古事)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이다. 이름에서 보듯이 ‘우공(愚公)’은 어리석은 사람이며 ‘지수(智叟)’는 지식을 쌓은 똑똑한 사람이다.
이야기는 이렇다. 바깥으로 나다니기 힘들게 마을 앞을 가로막은 태행산(太行山)과 왕옥산(王屋山)을 우공이 허물려고 한다. 산을 허문 흙은 수레에 싣고 700여리 떨어진 발해만으로 가져가서 버려야 하는데 거기까지 한 번 다녀오자면 거의 일 년이 걸린다.
나이 90에 이른 우공이 이 엄청난 일을 시작하자 지수가 참 어리석다며 비웃는다. 그러자 우공은 “내 생애에 다 못하면 내 자식이 할 것이고 내 자식이 다 못하면 내 손자가 할 것이니, 자자손손 대가 이어진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이 두 산이 없어질 것이다”라고 했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고사성어가 이 이야기에서 나왔다. 우리는 우공이산을 ‘열심히 하면 반드시 이룰 수 있다’는 뜻으로만 알고 있으나 여기에 깊은 의미 하나가 더 숨겨져 있다.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분별하라는 가르침이 그것이다.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도, 어리석지만 할 수 없는 일인데도 굳이 하려는 사람도 어리석다. 그러하므로 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하면서 할 수 없는 일에 손대지 않는 이가 참 지혜로운 사람이다. 이런 지혜로운 사람이 모이면 버리는 일 없이 모두 제 할 일을 잘해서 세상의 결이 반듯하게 잘 서게 된다.
그런 지혜로운 사람이 필요한데 세상에는 내남없이 오만과 편견에 빠진 사람들이 득시글거린다. 제 일은 팽개쳐 두고 마치 제 것이기나 한 양 남의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며 입에 거품 물고 훈수 드는 걸 정의로운 행동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세상에 차고 넘친다. 그러다 급기야 내 편 네 편으로 패거리 지어 서로 다투기까지 한다. 이런 혼탁한 세상이 올 줄 오래전에 예단한 열자(列子)가 우공(어리석은 사람)을 지혜롭게, 지수(똑똑한 사람)를 어리석게 이름이 주는 의미를 뒤집어서 이야기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우공이산’에 숨겨 놓은 이 깊은 뜻을 새기지 못하고 ‘나만 할 수 있다’며 여전히 오만과 욕망을 좇는다.어느 모임에 참석했을 때다.
독설가로 소문난 한 문학평론가가 “지식인들이 지금 우리 사회를 망치고 있다”고 했다. 지식인들이라 자처하는 분들이 들으면 언짢아할지 모르나 듣고 나서 가만히 새겨 보니 영 틀린 말은 아닌 듯해 나는 씁쓸하게 속웃음을 웃었다. 참지식인은 켜켜이 쌓은 지식(知識)을 말로 드러내지 않고 그 지식을 녹인 지혜(智慧)로 행동한다. ‘우공이산’에 나오는 우공이 그러한 사람이다.
김호운 소설가•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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