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에 따르면 미국에서 가장 흔한 길 이름은 ‘파크 스트리트’, ‘파크 애비뉴’ 다. 2번가, 1번가, 메인스트리트나 센트럴 애비뉴 같은 숫자로 된 길 이름도 많았고 오크, 메이플, 파인 같은 나무 길 이름도 흔했다.
더불어 워싱턴 불러바드나 링컨 스트리트, 로널드 레이건 프리웨이 같은 대통령 이름이 대세인 것은 한국과 다른 점이다. 미국에서는 대통령, 국회의원, 주지사 같은 정치인과 사회 지도자가 도로명에 자주 오른다. 유명한 ‘조지 워싱턴 메모리얼 파크웨이’, ‘루스벨트 브리지’가 그렇고 LA의 ‘알바라도’나 ‘피게로아’, ‘올베라’ 스트리트는 주지사와 판사의 이름이다. 다민족 국가답게 각 커뮤니티의 주요 인물들도 명명된다. LA 중심에는 도산 안창호 인터체인지가 있고 한인타운에는 도산 우체국이 있다.
하지만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조지아주 애틀랜타시의 도로명이다. 여긴 특별히 흑인 민권 운동가들의 이름이 많다. 애틀랜타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고향이지만 단순히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글로벌 스타’의 명예만을 명명한 것이 아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불러바드를 비롯해 유명한 ‘워싱턴 행진’의 주역이자 ‘의회의 양심’으로 불렸던 존 루이스 전 하원의원의 이름을 따르는 존 루이스 프리덤 파크웨이, 민권 운동의 총수 조셉 E 로우리 불러바드가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흑인 근로자 고용을 위해 투쟁한 조셉 E 분 불러바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과 비폭력 시민운동을 주도한 랄프 데이비드 애버내시 불러바드, 애틀랜타 최초 흑인 경찰관 고용을 이뤄낸 윌리엄 홈즈 보더스 드라이브, 조지아 대학교 최초의 흑인 학생 해밀턴 E 홈즈 드라이브, 애틀랜타 상공회의소 최초의 흑인 회장 제시 힐 주니어 드라이브, 애틀랜타 흑인 유권자 리그를 만든 존 웨슬리 돕스 애비뉴, 흑인대학 모어하우스 칼리지 총장으로 인권 운동의 지적 토대를 마련한 벤자민 E 메이스 드라이브 등, 인종차별과 싸운 다수의 민권 운동가들이 길 이름으로 명명되어 있다.
도로나 건물에 누군가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의 생애와 업적에 대한 존경과 더불어 그 정신을 기억하려는 노력이다. 그 거리, 공중 푯말들에 유명인이나 재력가나 정치인들만이 아닌, 차별과 불평등에 맞서 싸운 민권 운동가들이 올랐다는 사실은 놀랍다. 더불어 기억할 것은 그 인물들 면면의 위대함 뿐 아니라 이름을 담아 올릴 줄 알았던 이름 모를 사람들의 간절함이다.
매일 거리의 이정표를 대하며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과 차별 철폐에 헌신한 이들의 이름을 부르고 익숙해지는 사이 그들이 남긴 정신적 사회적 유산이 스며들 듯 기억되기를 바랐던 마음. 너무도 익숙해서 그저 무심히 흘러왔던 길 이름의 뜻을 한 번쯤 의문하게 될 때, 거리의 이름이 되어 거리를 지키는 위대한 영혼들의 존재를 깨닫기 바랐던 그 마음.
나는 최근 잦아지는 아시안 혐오와 폭력 앞에서 한인 이민자들이 아직도 여전한 ‘불평등’과 ‘차별’의 미국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에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 힘겨운 사회적 진보를 이룬 인물들이 있고, 그 고난의 시간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또한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보이는 폭력 뒤에 보이지 않는 희망이 있음을 보았다.
최주미 애틀랜타 중앙일보 디지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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