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컨은 아는 게 힘이라고 했는데, 우리 소문에 모르는 게 약이기도 하고, 심지어 중국에서는 식자우환(識字憂患), 아는 게 병일 수도 있다. 같은 일이라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며, 그 다른 결과는 그저 논리적이지 않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은 조심하지 못한 자기 잘못을 도끼에 전가하는 셈일 수도 있다. 강아지가 산책하며 애먼 것을 먹으면 나도 모르게 화를 내기도 한다. 그 화는 강아지한테 내는 걸까? 아니면 그걸 미리 말리지 못한 나한테 내는 걸까? 그런 화를 다스리지 못하면 정말로 불이 날 수 있다.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 이야기가 있다. 추운 날씨에 고슴도치 두 마리가 추위를 이기자고 가까이 다가간다. 그러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서로의 가시에 찔린다. 결국, 가시에 닿지 않을 만큼 가까워야만 아프지 않으면서 그나마 추위를 덜 탈 수 있다. 불가근, 불가원이란 말이겠다. 불가에서는 인연 함부로 맺지 말라고 했다. 거꾸로 뒤집으면 한 번 맺은 인연 귀중히 하라는 뜻일 수도 있다. 성찰(省察)이란 과거의 일이나 개인을 돌아보는 차원뿐만 아니라 사회변화의 맥락과 구조를 파악하는 힘이다. 본 것(혹은 보인 것)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곱씹어 생각하고 질문하고 분석하며 해석해 맥락과 구조를 보는 것이다. 다행히 세상사 변화의 맥락과 구조를 읽어내면 좋지만, 더 중요한 건 노력의 결과보다는 지성스러운 노력 그 자체이며, 최선을 다하는 삶 그 자체일지 모른다.
지난 3월 강릉과 동해에서 발생한 동해안 산불이 213시간43분 만에 진화되면서 역대 최장 시간 산불로 기록됐다. 산림 2만523㏊가 불에 탔다. 그 긴 시간 거기 터 잡고 살던 생명에게는 그런 지옥이 없었겠다. 화마가 자연히 발생하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인재일 공산이 크다고 한다. 얼마나 모진 사람이 그 많은 생명에게 그 끔찍한 지옥을 강요할 수 있단 말인가. 생각만 해도 무시무시하다. 무지라면, 그 무지야말로 죄 중의 죄이다. 손짓, 발짓, 말짓 하나가 미칠 영향을 가늠하는 것, 그것이 성찰이리라. 아무리 억울한 일이 있더라도 수만, 수십만 생명을 앗아가는 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그리고 사람 억울하게 만드는 게 이렇게나 위험하다는 걸 저마다 알아야 한다.
저 아래, 특히 남쪽에서는 이미 꽃들이 만발하고 새싹들 우쭐우쭐 돋았겠으나, 여기 대관령 700고지는 아직 햇살과 솔바람에 봄기운이 실린 듯하다. 이제 저 지옥이 되어버린 백두대간에도 며칠 지나지 않아 봄 햇살에 새순 돋고, 온갖 들꽃들이 꽃을 피워내리라. 그게 자연이다. 세상 다 끝날 듯한 지옥의 순간도 지나고 나면 낙원 같은 숲이 우거진다. 세상에는 죽이는 것 같지만 살리는 것들이 많다. 바람은 생명의 역사를 창조하고, 사막이 황량하지만 살아있는 건 바람 때문이며, 이것이 자연의 또 다른 신비이다.
김근홍 강남대 교수·한독교육복지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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