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일하는 여의도는 벚꽃이 흩날리며 계절이 바뀌었음을 알리고 있다. 그러나 자산시장은 여전히 겨울이다.
1분기 금융시장은 코로나19,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물가 급등, 공급 대란, 미국 연방준비은행의 금리인상 등 투자자들이 우려했던 악재가 대부분 현실화 됐다.
금융시장이 악재를 충분히 반영했다면, 이보다 더한 호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물가는 전문가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여전히 치솟고 있다. 3월 미국 소비자 물가지수는 지난해 대비 8.5% 상승하며, 40년래 최고를 기록했다. 특히 중국이 동계 올림픽 이후에도 코로나19 봉쇄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는 현실은 새로운 악재다.
선진국 소매업체의 재고가 부족한 상황에서 제조업체의 생산이 빠르게 회복될 수 있는 기대가 컸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과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기대는 약화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제품 가격은 유지하되, 제품 품질과 중량을 낮춰서 대응하며 사실상의 인플레이션에 동참하고 있다. 글로벌 생활용품 생산기업인 유니레버는 바디로션 한 통의 무게를 24온스에서 22온스로 줄였고, 펩시콜라는 스포츠 음료의 무게를 14% 줄였다. 손으로 잡기 쉽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소비자의 실질 구매력을 낮추는 조치다.
이러한 공급망 회복 지연과 비용의 상승은 하반기 경기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미국 연방준비은행은 경기를 다소 누르더라도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겠다는 입장으로 빠르게 전환했다.
연준 통화정책은 2015~2018년처럼 점진적으로 금리를 인상하고 회의 중간에 휴지기를 갖는 것이 아니라, 1994년처럼 신속히 인상하는 유형을 닮아가고 있다. 금리 인상으로 작년 말에 3.1%였던 미국 30년물 모기지 금리는 4.4%를 넘어섰다. 이는 주택을 포함한 내구재 경기에 부담 요인이 된다. 위드 코로나로 기대했던 경기회복에 대한 눈높이를 낮춰야 할 듯 싶다.
더욱이 미국 바이든 정부의 1.75조달러 경기부양안 통과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재정정책 성장률 기여도가 둔화되는 가운데, 농산물 공급 차질 불확실성까지 겹치면서 내년 초에 미국 경기침체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워졌다.
다만 침체가 발생한다면 폭은 얕을 것이다. 2001년 IT 버블 붕괴나 2008년 금융위기 때와는 달리 미국 가계가 여유현금을 3조달러 보유하고 있어서 충격 흡수력이 높다. 또한 기업이 보유한 재고 물량은 코로나19 이전보다 적은데 역사적으로 재고 물량이 이전 고점을 회복하지 못한 사례는 없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의 코로나19 환경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경기회복을 기대했지만, 기업들의 생산이 활발해지고 돈이 원활하게 도는 경기회복은 아직 요원하다. 경기회복은 내년 초의 완만한 경기침체를 거친 이후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금융시장은 여전히 겨울이다. 겨울에 나타나는 삼한사온(三寒四溫)과 유사한 흐름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추운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2분기는 사온(四溫)을 기대한다.
오태동 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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