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그렇게 검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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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수원지방검찰청 지검장

변호사가 된 지 3년 만에 검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무슨 거창한 포부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힘없고 소외된 사람, 법을 몰라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었다.

출근 첫날부터 수많은 사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건씩 배당되는 사건들 틈에 파묻혀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물론 초임검사에게 배당되는 사건이다 보니 큰 사건도, 중요한 사건도 아니었다. 음주운전이나 무면허운전 같은 사건부터 무허가 건축물 사건 같은 간단한 사건들이었다. 거기에 차용금 사기 사건, 마트에서 물건을 훔친 사건 같은 것들이 끼어 있었다.

변호사로서의 경험이 있긴 했지만, 검사로서의 시간과는 전혀 달랐다. 우선 변호사로서의 시간 대부분은 형사가 아닌 민사 사건의 대리인으로 보냈다. 형사 사건은 많아야 1년에 십여 건이었다. 그런데 검사된지 하루 만에 배당된 사건이 변호사로서 3년 동안 처리한 형사사건 수보다 훨씬 더 많았다. 그렇게 처리한 사건 수가 1년에 4천~5천건이었다.

초임지에서 2년 동안 1만여건을 처리한 경험을 발판 삼아 두 번째 임지에 부임했다. 고향과 가까운 곳이었지만, 옛 친구들을 만나 회포를 풀기도 어려웠다. 여전히 사건에 허덕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축적된 경험으로 인해 좀 더 능숙해졌다. 사건을 보는 눈도 넓어지고, 보완수사를 하는 노하우도 축적됐다. 지역 내 고질적인 병폐에 대해 눈을 돌릴 여유도 조금 생겼다. 덕분에 지역 내 비리에 대해 직접 수사를 해보는 기회를 가졌다.

세 번째 임지는 서울이었다. 형사부 검사 1년을 거쳐 특수부에 근무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어떤 동기는 강력부로, 어떤 동기는 공안부로 배치되었다. 80여명에 이르는 동기들이 전문화의 길로 비로소 걸음마를 떼었다. 2만여건이 넘는 송치사건 처리 경험과 갈고닦은 노하우를 토대로 정말로 제대로 된 수사를 해보자고 다짐했지만, 내 역할은 그저 선배들의 뒤치다꺼리나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경험이 헛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중요한 사건에 참여하는 기회를 갖게 되면서 사건을 보는 시각, 증거를 수집하는 방법, 관계자들을 조사하는 노하우 등을 배웠다.

그 후로도 형사부와 특수부를 왔다 갔다 하면서 수사를 배웠다. 중요한 사건의 주임검사로 공소장에 이름을 올리기까지는 10년에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그 동안에 3만 건이 넘는 송치사건을 처리하고, 특수부 막내로서의 시간도 거쳤다.

미국의 심리학자 엔더스 에릭슨은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한 1만 시간의 훈련이 필요하다고 한다. 바로 ‘1만 시간의 법칙’이다. 경제학에는 ‘규모의 경제’라는 용어가 있다. 좋은 품질을 가진 값싼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규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담 스미스는 그 원인으로 분업과 특화를 든다.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를 목적으로 ‘고위공직자수사처’가 만들어졌다. 그 결과는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이제 ‘중대범죄수사청’을 만든다고 한다. 어떻게 될까. 역시 말하지 않아도 결과는 자명해 보인다. ‘1만 시간의 법칙’과 ‘규모의 경제’가 무시되었기 때문이다.

수사라고 다를까. 내 경험으로는 그렇지 않다. 수만 건이 넘는 송치사건 수사 경험과 각자의 특성에 맞는 배치를 거쳐 형사, 공안, 특수, 강력 분야 검사가 만들어졌다. ‘1만 시간의 법칙’과 ‘규모의 경제’를 통해 비로소 나는 무늬만 검사가 아닌 진정한 검사가 되었다.

신성식 수원지방검찰청 지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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