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그곳&] ‘느리지만 숭고한 작전’ 유해발굴 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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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전 25사단 국사봉대대원과 ·국방부 유해발굴단 장병들이 파주 국사봉 고지에서 유해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국사봉 고지는 6·25전쟁 초기와 중공군 3차 공세 당시 치열한 ‘임진강 전투’가 벌어졌던 격전지이다. 윤원규기자

“ ‘느리지만 숭고한’ 작업을 통해 선배 전우들을 가족들의 품으로 돌려드리겠습니다”

10일 오전 9시 파주시 적성면의 국사봉 고지 150m 부근. 대형 태극기 앞으로 25사단 국사봉대대 및 국방부 유해발굴단 소속 장병 120여명이 삽과 호미를 들고 대오를 맞춰 집결했다.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란 구호를 복창한 이들은 ‘선배 전우’의 희생을 기리기 위한 묵념을 시작했다. 이어 일사불란하게 흩어진 장병들은 각자 배정된 자리로 순식간에 위치했다.

이 일대는 6·25 전쟁 초기와 중공군의 3차 공세 당시 치열한 고지전이 벌어졌던 현장이다. 25사단은 지난 1월부터 주민 제보 등을 토대로 해당 지역을 선정했고, 이날 유해발굴은 ‘면 발굴’과 ‘호 발굴’ 두 가지로 실시됐다. 면 발굴 작업은 국사봉 고지를 장병들이 원 모양으로 둘러싸 고지 아래부터 비탈 면을 따라 오르며 진행되며, 호 발굴 작업은 전쟁 당시 진지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을 집중적으로 발굴하는 작전이다.

현장에선 기초발굴병들이 삽을 이용해 땅을 파는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댔고, 전문발굴병들은 호미와 붓 등을 이용해 이들 뒤에서 파낸 흙을 치밀하게 수색했다. 행여 선배 전우들을 못 보고 지나쳤을까 장병들은 작업이 진행된 6시간 동안 쉴 새 없이 구슬땀을 흘렸다. 연하빈 병장(23)은 “선배 전우들이 목숨 바쳐 이 나라를 지켰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 편히 사는 것”이라며 “그런 마음가짐으로 무장하고 작업에 임하니 힘든 기운도 사라진다”고 의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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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관계자가 지난 3주간 발굴된 유물에 대한 설명을 진행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작전이 전개된 지난 3주간 이곳에선 국군 탄피, 미군 군번줄, 모르핀 약병, 중공군 밥 그릇 조각 등이 발견되며 치열했던 당시 상황을 짐작케 했다. 비록 아직 유해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 누구도 이 작전을 실패했다고 여기지 않았다. ‘느리지만 숭고한’ 이 작전에서 장병들은 지나온 곳은 다시 안 판다는 각오로 성실하게 임했고, 이 때문에 역설적으로 앞으로 유해가 나올 확률은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날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따르면 지난 2000년부터 시작된 6·25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은 매년 평균 580여구의 유해가 발굴된 국방부의 대표적 보훈 사업이다. 경기지역에선 그간 총 2천252구의 유해가 발견된 바 있다. 하지만 유해가 발굴돼도 신원 확인이 되는 사례는 1만여명 중 190명(약 1.9%)에 그치고 있는데, 이 때문에 발굴 현장에선 유전자 대조 시 사용되는 시료 확보를 위해 일반인들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시료가 풍부하게 확보될수록 시료와 발굴된 유해 속 DNA비교가 훨씬 폭 넓어져 이들의 신원을 찾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한성종 25사단 국사봉대대 중대장은 “집에 돌아가지 못한 선배들은 아직도 전역을 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사명감을 갖고 작업에 임하고 있다”며 “가족들 품으로 이들을 하루빨리 돌려보낼 수 있도록 시료 채취 등 일반인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다”라고 말했다.

김정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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