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그곳&] 서울~부산 8번 뛰고 100만원 쥐는 화물기사

7일 오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 앞에서 열린 화물연대 서울경기지부 총파업 출정식에서 노조원들이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안전운임제 전 차종·품목 확대, 운송료 인상, 지입제 폐지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조주현기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가 파업에 돌입하면서 머리에 빨간띠를 두른 화물기사들이 ‘생존권 보장’을 외치고 나섰다.

화물연대 서울경기지역본부는 7일 오전 10시께 의왕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파업 출정식을 열고 투쟁을 선포했다.

출정식에 앞서 5t 윙바디 차량을 단상으로 세우자 ‘요소수 대란! 기름값 폭등! 안전운임제가 정답이다’ 등의 구호가 적힌 빨간 피켓을 든 조합원 수백명이 한 줄에 12명씩 줄지어 앉았다. 투쟁을 외치는 붉은 물결은 육안으로 끝을 가늠키 어려울 정도였다.

생존권 보장을 외치며 물류 거점으로 모여든 화물차량들의 종류는 대형 화물트럭부터 트레일러, 카캐리어(완성차 운반 트레일러) 등으로 다양했다. 다만 하나같이 붉은 바탕에 노란 글씨로 ‘안전운임 일몰제 폐지’ 혹은 ‘투쟁’이라 적힌 현수막을 건 모습이었다.

2시간에 걸친 출정식엔 1천명 안팎의 조합원이 참가했으며, 이봉주 화물연대본부 위원장, 최정명 민주노총 경기도본부장 등이 나서 투쟁을 독려했다. 출정식을 마친 뒤 400명가량은 평택항으로 이동했고, 각 거점에서 물류 출하를 저지하는 거점봉쇄에 들어갔다.

화물연대의 주된 요구사항은 일몰제로 도입돼 오는 연말 폐지를 앞둔 ‘안전운임제’의 확대 시행이다. 수출입 컨테이너, 시멘트 차량 등 전체의 6.5%에만 적용되는 안전운임을 전차종으로 확대하지 않으면 최저 운임마저 보장받기 어려워진다는 게 노조 입장이다.

끝을 모르고 치솟는 경유값 역시 큰 반발요인이다. 경기 지역 경유값은 지난해 6월 ℓ당 1천357원에서 이날 기준 2천37원으로 1.5배 급등했다. 증가세는 올 들어 더욱 가팔라지고 있는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국제 정세의 여파로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7일 오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 앞에서 열린 화물연대 서울경기지부 총파업 출정식에서 노조원들이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안전운임제 전 차종·품목 확대, 운송료 인상, 지입제 폐지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조주현기자

수도권에서 40년째 화물운송에 종사하고 있다는 권정만씨(68) 역시 경유값이 올라 ‘살면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털어놨다. 5t 윙바디를 몰고 전국을 누비던 권씨는 낮은 운임 대비 높은 기름값으로 차라리 운행을 멈추는 게 이득인 처지가 됐다.

권씨는 “통상 월 1천만원의 수익이 나면 기름값으로만 450만원 정도를 지출했는데, 경유값이 오르면서 최소 월 200만원은 더 쓰고 있다”며 “한 달에 서울~부산 장거리 운송을 8번 뛰어도 수중에 남는 돈은 100만원 남짓”이라고 하소연했다.

평택항에서 투쟁을 외치던 비조합원 김윤중씨(58)도 “평택에서 양산까지 운임비로 94만원을 받는데 기름값만 50만원”이라며 “보험료와 차량 유지비를 쓰고 나면 남는 게 없는데 안전운임제마저 사라지면 과로·과적의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큰 물리적 충돌 없이 파업 첫날을 보낸 화물연대는 의왕ICD, 평택항 등 주요 물류 거점마다 천막을 차리고 화물 운송을 저지할 계획이다. 평택항의 경우 검역본부를 제외한 4·7·8 정문과 현대글로비스 터미널에 대한 거점봉쇄를 계속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봉주 화물연대본부 위원장은 “그간 최저입찰로 운반비가 내려가고 화주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며 “과거 총파업 때와 달리 터미널로 오는 화물차량이 없다는 건 42만명의 화물노동자가 안전운임 확대를 위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경기도는 ‘경계’에 해당하는 위기경보를 발령하고 비상수송 대책본부장을 행정2부지사로 격상했다. 아울러 일선 지자체의 자가용 유상 운송 허가를 지원하고, 운송거부 사태가 전국적으로 번질 경우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대응 수준을 높일 방침이다.

장희준·안노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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