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선거’ 문화강국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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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람 한국지방자치학회 연구이사

지방선거가 끝이 났다. 2주 간의 선거운동기간에 12만8천여장의 현수막, 길이로는 서울-도쿄 거리의 현수막이 내걸렸다고 한다. 공보물은 5억8천만부, 한데 모으면 여의도 면적의 10배에 달한다. 득표율 15%만 넘으면 선거비용이 전액보전되니 안할 이유가 없다. 국민세금으로 만드는 선거공보물과 현수막은 선거가 끝나면 거의 폐기된다. 특히 공보물은 유권자들의 손에 가보지도 못한 채, 포장된 상태 그대로 버려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에 공보물과 벽보 등을 재생용지로 쓰도록 하거나, 책자형 공보물을 온라인공보물로 바꾸는 등의 공직선거법 개정안 등이 발의됐지만,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결국 현행법 아래에서, 친환경 선거는 후보자의 의지에만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이번 지방선거에서 전국 각 지역에서 청년후보들의 ‘조용하지만 강한’ 친환경〈30FB〉무소음선거운동들이 이목을 끌었다. 유세차량 대신에 깃발을 꽂은 전기자전거를 타고 다니거나, 쓰레기를 주우며 도보유세를 하는 후보들이 눈에 띄었다. 앰프가 설치된 유세트럭이 소통과 경청을 위한 ‘토크트럭’으로 변하거나, 차량에 태양광발전패털을 설치해서 야간조명에 활용하기도 했다. 재활용도 중요하지만 아예 선거폐기물 자체를 만들지 않는 제로웨이스트 선거운동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선거문화의 변화를 고민하고 실제 행동으로 옮기고자 하는 후보들의 의지와 노력에 유권자들도 함께 훈훈하고 유쾌해진다.

왕래가 자유롭던 시절, 총선시즌에 맞춰 스웨덴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현수막은 찾아볼 수도 없었고, 유세차량과 현란한 율동 대신에 정당별, 후보별 부스가 역앞이나 광장 등 주요 장소마다 설치돼 있었다. 선거부스에서는 전시, 교육, 안내, 대화가 이뤄지고 주요정책이나 대표공약에 대해서 친절하게 알려주고 질문에 답하는 등의 소통이 자유롭게 오가고 있었다. 정책이 잘 드러날 수 있게 디자인된 홍보 리플렛, 정당로고가 새겨진 뱃지나 볼펜 등의 간단한 홍보물을 배부하기도 했다. 선거운동에 대한 금지규정이 거의 없어서 오히려 다양한 방식의 선거문화가 발달할 수 있었으며 SNS를 통한 선거운동 또한 광범위하게 허용하고 있었다.

기후위기시대, 친환경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린 지금, 친환경공약은 무수히 쏟아지지만 그 공약을 전달하는 방식은 너무나도 친환경적이지 않다. 기술의 발전으로 선거문화도 충분히 새롭게 달리 바꿀 수 있음에도 선거운동방식은 여전히 기존의 관습을 답습하고 있다. 문화강국 대한민국이 ‘선거’문화강국으로도 한 걸음 더 도약하는 길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김보람 한국지방자치학회 연구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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